그림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그림은 홀바인의 <대사들>입니다. 홀바인이라는 화가에 대하여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역사상 최고의 초상화가가 맞는 것 같네요.
홀바인(Has Holbein the Younger. 1497년경-1543)은 아버지(Hans Holbein the Elder, 1465년경-1524)와 같은 이름이었고 같은 화가였습니다. 그는 독일(신성로마제국)에서 종교개혁으로 제단화 수요가 줄게 되자 영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영국은 신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청과 관계 단절을 선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하지만 영국에서 초상화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여 부와 명예를 얻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영국 사람은 초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런던에 내셔널 초상화미술관이 있을 정도입니다. 내셔널 초상화미술관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초상화만 따로 분리하여 전시하고자 건립한 곳으로 12만여 점에 이르는 영국 위인들, 왕족들의 초상화나 사진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헨리 8세 궁정화가가 된 홀바인은 유럽을 돌며 헨리 8세의 신부감 얼굴을 그려 보내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헨리 8세는 홀바인이 그린 그림 속 여인을 보고 결혼을 하기로 했다가 실물을 보고 실망해서 이혼하고, 심지어 이 신부를 추천한 장관 토마스 크롬웰을 처형시킨 일도 있었지요.
1533년 당시 헨리 8세는 스페인 출신의 왕비 케서린과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거절하자 가톨릭과 단절을 선언한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 프랑수아 1세는 영국과 교황청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고자 대사를 파견합니다.
프랑수아 1세가 파견한 대사가 장 드 딘트빌(Jean de Dinteville)인데 그는 영국에 머무는 것이 연장되어 불만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죠. 이때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가 오게 되자 그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홀바인에게 이 작품을 의뢰하여 프랑스의 폴리시의 대저택에 걸고자 했습니다.
그림 속의 왼편 인물은 의뢰자 딘트빌이고, 오른편 인물은 성직자 셀브입니다. 그들이 의상과 벨벳 등은 부와 높은 지위를 보여줍니다. 딘트빌의 오른손에 든 칼에 쓰여 있는 숫자 29, 셀브의 오른팔을 올려둔 책 아래의 숫자 25는 각각 그들의 나이를 뜻합니다. 또한 칼은 활동적인 삶을, 책은 내면의 양식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홀바인은 실크와 모피, 금속과 나무, 양탄자 등을 실물처럼 생생히 표현하는 능력도 탁월하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많은 사물들과 바닥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물건들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림에는 많은 암시와 상징이 담겨 있는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2단으로 된 선반 위쪽에는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당대 최고의 천문학 기구로, 1533년 4월 11일을 알려줍니다. 선반에 놓여 있는 사물에 대한 설명과 그림의 세부적인 부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The Ambassadors>
서양 최고의 초상화가 한스 홀바인(Has Holbein the Younger. 1497년경-1543)은 독일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성상파괴의 여파로 작품 주문이 줄게 되자 그는 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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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 아래쪽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지구본, 수학책,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담은 찬송가, 끊이진 현 하나가 보이는 류트를 그려 놓았습니다. 류트의 현이 끊어진 것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갈등과 불화를 암시합니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는 초록 커튼 뒤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조각상도 살짝 숨겨져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1533년 4월 11일은 바로 부활절 3일 전인 성금요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화 성격을 띠면서도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 틀림없네요. 여기에 그림 아래에 떠 있는 것 같은 것은 두개골인데, 그림의 종교적 의미를 더욱 강화시킵니다. 그림 속의 두개골은 좌우로 길게 늘여놓아서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법을 아나모르포시스(Anamotosis)라고 하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공책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측면에서 보면 두개골의 모습이 명확해집니다.
두개골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기 위한 소재인데,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두개골은 인생무상의 주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홀바인은 권세와 부 그리고 첨단 과학 자식을 소유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기 위해 해골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여기서 그림을 관찰하는 시점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것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관람자는 위로 딘트빌의 눈을 지나면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면 구원을 받게 되겠지요. 반면 아래를 내려다보면 두개골만 보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흙으로 창조되었는데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무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홀바인은 부와 권세와 지식을 두루 갖춘 대사들의 초상에 죽음의 이미지를 그려넣음으로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왕까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부와 권력, 세속적 성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고 겸손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이 그림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잠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그려졌을 당시 구교와 신교로 분열하였듯,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쪽과 탄핵을 반대하는 쪽으로 분열된 여론이 떠오르더군요. 이런 가운데 극우로 인식되는 일부 기독교 세력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루속히 대한민국의 갈등가 분열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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