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레드 뒤러의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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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알프레드 뒤러의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by 다시채 2024. 10. 4.

   미술에 대한 포스팅을 하지 못한 지 두 달이 넘었네요. 이번에는 독일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일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목판화, 동판화, 초상화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이었을 뿐만 아니라 북유럽의 레오나르도라 불릴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탈리아를 두 차례 방문한 후 그는 미술 이론서와 기하학과 자연 과학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친 책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뒤러는 미술사에서 최초’, ‘최고라는 신기록을 가장 많이 세운 화가기도 합니다. 13세에 자화상을 그린 최연소 화가, 누드 자화상을 그린 최초의 화가, 미술 이론 저서를 낸 최초의 화가, 위작 방지를 위한 서명을 그림에 최초로 새긴 화가, 기념 메달에 얼굴이 새겨진 북유럽 최초의 화가, 세계 지도와 천구도를 목판화로 제작한 최초의 화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간 최초의 북유럽 화가 등등....

 

 뒤러는 자신의 초상화를 반복해서 그릴만큼 뚜렷한 자의식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시의 자화상은 부유한 권력자의 의뢰로 그려졌을 뿐 화가에게 의뢰해서 그리는 것이었지, 화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남기기 위한 것은 없었습니다.

 

뒤러이 &lt;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gt;이란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  67.1X 48.9cm,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그의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8세에 그린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Salbstildnis im Pearock>입니다. 화가가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을 뒤러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는 화가의 창조력을 제빵 기술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화상을 통해서 예술가가 예수만큼 고귀하고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도록 에수의 분위기와 닮게 연출을 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는 좌우 대칭 자세를 취한 러의 눈빛에서는 근엄하고 당당함이 묻어납니다. 전통 미술에서 정면을 보는 초상화는 신과 같은 성스러운 존재나, 신에게 지상의 지배를 위탁받은 군주를 그릴 때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야 관객의 시선을 인물에게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초상화는 옆모습을 그리거나 아니면 4분의 3 정도로 방향을 튼 구도로 그리게끔 정해져 있었는데 뒤러는 과감하게 이 불문율을 깬 것입니다.

 

  정면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 앞섶을 여민 손의 위치와 위를 가리키는 손가락, 성자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머릿결 등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현실감을 더해줍니다. 갈색 톤의 품위 있는 색조가 이 그림을 더욱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예술가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는 값비싼 모피 코트를 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귀한 신분의 예술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림 왼편에 “AD 1500”이라고 적힌 알파벳과 숫자가 보입니다. AD는 알브레히트 뒤러 이름과 성의 첫 글자를 딴 서명이고, 1500은 그림을 그린 제작 연도입니다. 또한 AD그리스도가 오신 후라는 ‘Anno Domini’의 약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약자를 염두에 두고 뒤러는 자신의 서명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뒤러는 원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 가치를 보증하는 서명을 최초로 디자인하고 사용한 화가였습니다. 뒤러가 이런 시도를 했던 이유는 그의 작품은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수많은 모조품이 나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서명을 모방하는 가짜 작품들이 등장하여 뒤러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림 오른편에 여기 나, 뉘른베르크 출신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나의 모습을 그렸다"라는 글을 적었어요. 자신의 직업이 화가이며 화가는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이런 방식으로 강조한 겁니다.

 

  이 작품은 뒤러의 마지막 자화상입니다. 아마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와 유사한 구도로 그렸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작품은 무의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화가가 목수, 대장장이, 제빵 기술사 등의 장인으로 인식되던 시기에 자신을 예수의 초상화에 빗대어 그린 그의 자신감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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