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Venus of Urb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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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Venus of Urbino>

by 다시채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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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누드화는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지난 미술에 대한 포스팅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란 작품이었습니다. 그 이후 누드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서양 누드화의 역사적 흐름

  지난번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이어, 이번에는 누드화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살펴보겠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5/1488-1576)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중개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베네치아에 축적된 부는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후원으로 이어졌고, 베네치아 회화는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베네치아는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의 2대 중심지가 되었죠. 특히 베네치아에서 캔버스가 처음 사용된 것은 미술사적으로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캔버스 이전에는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목판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해상 무역과 상업이 발달했던 베네치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술 표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티치아노의 &lt;우르비노의 비너스&gt;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4년 , 119x165cm,  우피치미술관

 

우르비노의 비너스 : 아름다움과 상징성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년, 우피치 미술관 소장)는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누드화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 작품은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당시 사회의 미적 기준과 결혼 생활의 행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이 있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작품의 의뢰 배경 또한 불분명합니다.

 

  이 작품은 결혼 생활의 행복을 기원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은 비너스를 그린 그림이 부부의 사랑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침실에 장식용으로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 소품들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여인의 발치 아래에 있는 개는 배우자에 대한 충실함을 뜻하며, 뒷배경에서 옷장을 뒤지는 소녀를 바라보는 하녀는 모성을 상징합니다. 여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미와 창가에 놓인 도금량나무 화분은 비너스의 상징으로서, 육체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부부의 영원한 유대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대 누운 여인은 다산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아내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이 티치아노의 다른 누드화들보다 상대적으로 정숙한 표현을 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예술적 파격과 후대에 미친 영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에는 미학적인 관점에서 약간의 시각적 긴장감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침대에 누운 여인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으며, 빨간색, 짙은 녹색, 흰색이 어우러진 실내 공간과 실크 같은 침대보의 질감은 섬세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서양 미술사의 관행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eles)가 정립한 '정숙한 비너스'(Venus Pudica)는 수줍은 듯 가슴과 음부를 가려 순수함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누드화는 관람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비너스나 디아나 같은 여신을 빗대어 그리는 암묵적인 규칙을 따랐죠.

 

  하지만 티치아노의 그림 속 여인은 가슴을 가리지 않았고, 관람자를 직접 응시하는 시선은 '베누스 푸디카'의 전형에서 벗어납니다. 원래는 단순한 누드화였지만, 우르비노의 공작 위도발도 2세 델라 로베레(Guidubaldo II della Rovere)가 이 작품을 구매한 이후, 16세기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여인의 정체성을 비너스로 규정하면서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이 작품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당시 부부 관계의 행복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작품 속 여인의 몸매는 당시 미인의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풍만하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사과 같은 가슴과 서양배처럼 볼록한 복부의 표현이 그러합니다.

 

  티치아노는 비너스의 뒷배경을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여인의 상반신 쪽 배경은 어둡고 진한 커튼으로 처리되어 여인의 신체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며, 하반신 쪽 배경은 넓은 실내 공간으로 그려져 시원한 공간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작품은 후대 누드화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마네의 <올랭피아>가 대표적입니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비너스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의 구도를 모티브로 삼아 당시 사회의 인물을 그려 넣어 큰 화제를 낳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누드화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누드화에 대한 이전의 포스팅은 아래 글을 참조하세요.

https://dasichae.tistory.com/298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이번에는 르네상스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면서도 훗날 여성 누드화의 영감을 준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4?~1510)는 르네상스 시대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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