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누드화는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지난 미술에 대한 포스팅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란 작품이었습니다. 그 이후 누드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5/1488-1576)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은 중개무역 통해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베네치아에 축적된 부는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후원으로 이어져 베네치아의 회화도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베네치아는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의 2대 중심지가 되었죠. 베네치아에서 캔버스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미술사의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캔버스 이전에는 목판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불편하고 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또한 해상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베네치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이었고 세속적이었기에 성 문화도 매우 자유로웠습니다. 16세기 베네치아의 총인구가 15만 명 정도였는데 매춘부가 2만 명에 이를 정로 성매매가 호황이었습니다. 매춘부에도 등급이 있었습니다. 상류층 남성들을 상대하는 코르티자나 오네스티(Corigiana Onesta)라는 고급 매춘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코르티자나 디 루메(Cortigiana di Lume), 그리고 최하층의 '메레트리체(meretricio)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왕족, 귀족 등 상류층의 사람들의 정부나 고급 매춘부를 코르티잔(Courtesan)이라 부르는데, 코르티잔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하고 예술과 음악에도 능해야 했습니다.
서양 미술사상 가장 요염한 누드화 중 하나로 꼽히는 티치아노의 걸작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노골적으로 여성의 관능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작품일까요? 아니면 여인의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부부의 결혼생활에 도움을 주는 작품일까요? 이 작품 속의 여인은 누구일까요? 1530-1540년대에 명성을 떨친 베네치아의 매춘부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습니다. 또한 작품 의뢰를 받아 만들어진 작품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합니다. 이 작품은 마치 양념반과 후라이드반으로 된 ‘반반치킨’처럼 여성의 신체에 대한 관능미와 결혼생활의 행복이란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던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작품에는 결혼생활을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림 속의 소품들은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가득합니다.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에게 비너스를 그린 에로틱한 그림은 부부의 성생활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종종 침실 장식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여인의 발치 아래 있는 개는 배우자에 대한 충실함을 뜻하며, 뒷배경에서 옷장을 뒤지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하녀는 모성을 상징합니다. 여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미와 창가에 놓인 도금량나무 화분은 비너스의 상징으로서, 육체적 사랑뿐만 아니라 부부의 영원한 유대관계를 의미합니다. 요염한 자세로 기대 누운 여인은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다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아내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학자들은 이 작품이 티치아노가 그렸던 다른 누드화들보다 정숙한 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분석도 이 작품이 성적인 요소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느껴지는 성적인 자극은 분명합니다. 벌거벗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은 유혹하는 눈빛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빨간색과 짙은 녹색, 흰색이 연출하는 은밀한 실내, 실크 같은 느낌의 침대보와 주름에서 일어나는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서양 미술사의 관행을 깨뜨렸습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eaxidles)가 정립한 ‘정숙한 비너스’(Venis Pudica)는 수줍은 듯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왼손으로는 음부를 가려 행실이 바르고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화가들은 누드화를 그릴 때 감상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암묵적 규칙을 따라 대부분의 누드화는 비너스나 디아나 같은 여신을 빗대어 그렸습니다.
그런데 티치아노가 그린 그림의 여인은 가슴을 가리지도 않았고 여인이 관람자를 요염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베누스 푸디카’에서 벗어난 작품입니다. 원래 단순한 누드화였는데, 우르비노의 공작 위도발도(Guidubaldo II della Rovere)가 이 작품을 구매한 이후 16세기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여인의 정체성을 비너스로 규정하여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된 것입니다.
위와 같이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한편으로는 성적인 관능미를 자극하는 요소와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부부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의 여인은 당시 미인의 기준이었던 몸매를 따르고 있습니다. 풍만하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사과 같은 가슴과 서양배처럼 볼록한 복부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티치아노는 비너스의 뒷배경을 두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여인의 상반신 쪽의 뒷배경은 어둡고 진한 커튼으로 처리되어 여인의 신체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으며, 하반신 쪽의 뒷배경은 넓은 실내 공간으로 그려져 시원한 공간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작품은 후대 누드화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마네의 <올랭피아>입니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비너스에서 인간의 솔직한 성적 욕구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구도를 모티브로 삼아 당시의 코르티잔을 그려 넣어 큰 화제를 낳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누드화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누드화에 대한 이전의 포스팅은 아래 글을 참조하세요.
https://dasichae.tistory.com/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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