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에 문제작 지금은 명작으로 알려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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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당시에 문제작 지금은 명작으로 알려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by 다시채 2024. 3. 4.

   지금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문제작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863년 프랑스 왕립 미술원이 개최한 살롱전에는 다른 해보다 상금이 커서 5000점을 출품되었고, 2783점이 낙선했습니다.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이 우승을 했는데, 심사위원들은 보수적이어서 심사에 불만을 가진 화가들이 많았습니다. 
  거센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나폴레옹 3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낙선작을 모은  "낙선전"을 개최하여 관람객들이 직접 판단하게 하였습니다.  낙선전은  첫날 7천 명 이상이 몰려들 정도로 성공적이었는데, 조롱과 아유를 보내기 위함이었죠.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낙선전에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 )의 3개의 작품도 포함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Luncheon on the Grass >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전시되자 관람객들로부터 심한 비난이 쏟아져 나왔고, 신문에는 악평을 실리게 되었습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이란 모네의 그름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년, 207*265cm, 오르세 미술관

 
 
   그림은 숲으로 소풍 나온 두 명의 신사와 여성이 함께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성들은 정장 차림이고 여성은 완전히 누드 상태입니다. 오른쪽 남자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데 여인과 다른 남자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네요. 뒤쪽에는 속옷만 입은 여인이 물속에서 씻고 있습니다.  이들은 점심을 먹고 남은 빵과 과일이 나뒹굴어져 있고 빈 술병도 쓰러져 있습니다. 심지어 누드 상태의 여인은 부끄러움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관람객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화폭에 담은 것 자체가 외설적이기에 비평가들과 관객들은 모두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마네가 전통적인 표현 기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비판을 받았야 했습니다. 두 남자와 여인의 밝은 살갗을 평평하고 단순한 색면으로 처리하고, 나무와 풀의 표현도 명암을 대담하게 생략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근법도 틀렸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뒤편에 있는 여인이 너무 크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마네의 이 작푼을 기준으로 원근법을 지향하는 양식이 거부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보수적인 화풍은 받아드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누드 여인의 배가 나온 것까지 문제시 했습니다.
 

 
   마네의 이 작품이 외설적인 그림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사실 마네는 그림을 통해 당시 사회의 도덕성을 고발한 것입니다. 그 당시 남성들은 소풍 가는 듯한 복장을 하고 매춘 여성들과 함께 숲 속 풀밭으로 나들이를 가곤 했습니다. 꾸며낸 여인이 아니라 실제 있는 그대로의  여인을 그림으로써 당시 프랑스 사회의 가식과 위선을 꼬집었던 것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외설을 찾아낸 사람들에게  마네는 외설적인 생활을 알아본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이런 의도가 분명해 보입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지금은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1863년 낙선전은 마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던 문제작이었습니다. 온갖 비난과 악평에 시달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마네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네는 1865년 살롱전에 당시 고급 매춘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던 이름인 <올랭피아>란 작품을 출품하여 또 한 번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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