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누아르의 대표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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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르누아르의 대표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by 다시채 2024. 3. 19.

  파리지앵(Parisien, 프랑스 파리에 사는 사람)의 행복한 일상을 잘 포착하였던 르누아르의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소개합니다.


 

  어린 시절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는 그림보다 음악에 더 소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음악을 포기했는데 만약 그가 클래식 작곡가가 되었다면 어떤 작품을 남겼을까요? 역사화나 종교화보다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던 것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음악은 분명 전통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르누아르는 노년에 심하게 관절염을 앓아 손가락이 뒤틀려 붓을 쥐는 것이 힘들었을 때도 손에 붕대를 감고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 것을 볼 때 마지막 순간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가 친밀하게 지냈던 모네가 풍경화를 주로 그러던 것과 달리 르누아르는 인물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동시대의 사람들의 즐거움을 그려낸 화가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Dance at Le Moulin de la Gaette>877년 세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입니다.

 

&lt;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gt;를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 1876 년 , 131.5x176.5cm,&nbsp; 오르세 미술관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위치한 풍차입니다. 갈레트 빵과 과자를 팔던 곳이었는데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유흥 중심지로 떠오릅니다. 이곳은 시내보다 물가가 쌌기 때문에 노동자들이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는데, 르누아르의 작업실도 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춤추고 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현재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며 물랭 드 라 갈레트도 여전히 영업 중이라고 합니다. 르누아르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 1.8m 정도 되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널찍한 무도회장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그려져 있습니다. 상류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힘든 한 주간을 보낸 젊은 노동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림 속에는 하늘을 비롯한 배경도 없이 오로지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구성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올라가는 대각선으로 나누어보면, 왼편의 후경은 춤을 추는 사람들로 오른편의 전경은 즐겁게 대화를 인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lt;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gt;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미지입니다.

 

  르누아르는 오른쪽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그려졌는데, 왼쪽  노랑 동그라미로 원에 있는 춤을 추는 커플이 관람자와 눈을 마주치게 배치하여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사람들의 옷이 얼룩덜룩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른쪽 의자에 앉아 등을 보이는 사람은 얼룩이 묻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나뭇잎 사이로 비친 따사로운 햇빛이 비취는 순간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는 빛의 효과입니다. 관람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춤을 추는 커플의 주위는 나무의 그림자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르누아르는 색을 엷게 칠하고 색감이 번지게 하여 빛이 퍼지는 듯한 효과를 주어 무도회장의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파리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담아낸 르누아르를 파리의 스냅 사진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르누아르는 모델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친구들을 불러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아니 친구들의 도움이 없이는 물감을 구하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전주의 작품에 익숙했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보고서 얼룩지게 물감을 사용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지앵(Parisien, 프랑스 파리에 사는 사람)의 행복한 일상을 잘 포착하여 인상주의 화법을 잘 구현한 르누아르를 후원한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부유한 인상파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이 그림을 사들였고, 당시 사교계를 주름잡던 샤르팡티에 부인이 르누아르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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