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주로 포스팅하는 사람으로서 독일음악과 문학은 언급할 기회가 많았지만 독일 미술은 소개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마음을 사로잡는 독일화가의 그림이 있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는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같은 낭만주의 작품이지만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 그의 작품은 뭔가 심오하고 철학적인 분위기를 많이 자아냅니다.
프리드리히의 예술철학은 “화가는 눈앞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보이는 것도 그려야 한다”는 말로 표현됩니다. 이런 화풍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입니다. 프리드리히는 엄격한 루터교 신자이자 정신적인 숭고함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작품 속에 정신의 숭고함과 종교적 영감이 담으려고 했습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독일 낭만주의의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가파른 바위 위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이 사람의 눈앞에는 눈부신 광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남자의 발아래로 안개의 바다가 펼쳐지고, 저 멀리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아스라이 보입니다. 하늘에는 붉고 푸른빛의 구름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은 독일의 작센 지방과 체코 보헤미아 사이에 위치한 엘베사암 산맥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프리드리히가 직접 등반한 산입니다. 하지만 그림 속의 풍경은 그가 현장에서 스케치한 것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림 속의 남자는 누구일까요? 이 남자의 정체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트도이체(Altdeutsche Tracht 독일 민족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입었던 의상) 복장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군과 싸우다 전사한 독일군 장교라는 주장도 있고, 머리 모양이 닮아서 프리드리히의 자화상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 속의 남자의 정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프리드리히는 의도적으로 익명성을 위해 인물의 뒷모습을 자주 그렸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 남자의 앞모습은 볼 수가 없기에 그가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산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왜 이런 곳까지 올라온 것일까요? 정신적인 숭고함을 추구했던 프리드리히 자신의 고민을 뒷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작품명에 '방랑자'라는 이름을 붙인 것과 ‘안개’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볼 때 현실을 초월한 이상적인 세계에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작품을 볼 때 개인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다른 명작들의 놀라운 묘사가 기발한 구도나 새로운 기법은 없어도 작품 속 남자를 통해 내가 얼마나 넓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얼마나 내가 추구했던 것에 도달하였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주는 Rückenfigur(back-figure)는 기법을 통해서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뤼켄피구르(Rückenfigur)는 회화, 그래픽 아트, 사진 및 영화의 구성 장치로 사용되는데, 사람이 뒤에서 바라보며 앞의 풍경을 관조하는 모습은 관람자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하는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합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들은 생애 말기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나치 선전으로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사용하여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 1970년대부터 그의 작품들은 재평가와 새로운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정신적 숭고함을 추구하는 예술은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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