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브란트의 작품 <야간순찰/ 야경>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야경>의 의뢰인들이 맘에 들이 않았으나 램브란트가 남긴 명작이 된 작품, 그림의 배경이 밤이 아니라 낮인데 잘못 알리진 작품입니다.
빛의 화가로 알려진 램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의 대표작 중의 하나가 <야간순찰/ 야경, The night watch>입니다. 램브란트가 화가로서의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집단 초상화 의뢰를 받아 그린 것입니다. 제목이 <야경>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짜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방위대>입니다. 사실 램브란트가 활동했던 시대에는 그림 제목이 없었습니다. 19세기가 되어서야 화가들은 작품에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지요.
그렇다면 <야간순찰/ 야경>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이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그림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 아니라 낮입니다.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과 부관 그리고 순찰을 나가기 전에 무기를 손질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의 배경이 밤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는 그림의 표면을 보호하기 위해 바른 니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검게 변했기 때문에 야간 경비를 위한 준비로 보입니다.
1642년 암스테르담 민병대 대장과 부하들이 렘브란트에게 집단 초상화를 의뢰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단체 초상화는 매우 인기가 높았는데, 특히 민병대(시민군)를 소재로한 작품이 16-17세기에 250점 가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렘브란트에게 지불해야 할 그림값의 대부분은 대장이 부담했으나 그의 부하들도 1인당 3개월 치 급여에 해당되는 적지않은 돈을 보탰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멋진 모습을 기대했겠지요.
당시 집단 초상화로 프란스 할스(1582-1666)이 인가가 있었는데, 램브란트의 집단 초상화의 특징은 몰래 찍은 사진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속에서는 군대의 엄격한 계급 사회의 분위기 대신 자유로운 분위기와 인물들 간의 친밀감이 풍겨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과 부관입니다. 챙이 넓은 검은색 모자를 쓰고 검은 옷에 붉은 어깨띠를 두르고 왼손을 앞으로 내민 채 정중앙에 서 있는 남자가 대장입니다. 그 옆에 흰색 깃털 장식 모자를 쓰고 금색 자수로 장식된 아이보리색 옷을 입은 사람이 부관 빌럼 판 라위턴뷔르흐 입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난 민병대원들은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사진기가 없었기에 자신들의 얼굴이 훤하게 나오는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림 속의 자기의 얼굴을 어둡게 그려서 다른 대원들보다 눈에 띄지 않는다거나 얼굴의 일부가 가려졌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많은 돈을 지불한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의뢰자들은 렘브란트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으로 다시 그려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고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램브란트가 화가로서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던 덕분에 위대한 걸작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으나, 경제적으로 램브란트는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렘브란트가 의뢰인의 요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소문이 나게 되어 귀족들로부터 초상화 주문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1715년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작품이 시청을 장식 할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장식할 크기를 맞추기 위해서 그림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로 그림의 왼쪽 부분에 그려져 있던 두 인물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작품의 가장자리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위쪽도 너무 여백이 없고,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부분만 보이도록 그린 것 같습니다. 단체사진 개념의 그림이기 때문에 아무리 램브란트가 예술성을 추구했다고 해고 지금처럼 보이는 그림의 구도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경>의 의뢰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감상하는 명작의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3개월 치의 월급으로 이렇게 세계적인 명작에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면 성공적인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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