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 로랑생의 <코코 샤넬의 초상 Ritratto di Coco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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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마리 로랑생의 <코코 샤넬의 초상 Ritratto di Coco Chanel>

by 다시채 2023. 11. 29.

  이번에 소개할 그림은 프랑스의 여성화가 마리 로랑생의 명품패션 샤넬의 창업자 코코 샤넬의 초상화입니다. 


  국회의원의 숨겨진 여인의 딸로 태어나 힘들게 자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은 교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권유에도 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피카소의 소개로 당시 혁신적인 미술 평론을 주도했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나게 되는데, 그 후 검은색과 흰색이 주로 사용하던 우울한 화풍에서 벗어나 밝고 개성 있는 그림을 선보이며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보라색 계열의 파스텔 톤 색채와 유려한 선, 단순화된 형태, 특히 보라색과 분홍색, 청색 계열이 주조를 이루는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프랑스적 감성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샤넬(본명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 Gabrielle Bonheur Chanel, 1883~1971)도 로랑생과 비슷하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2세에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그녀를 수녀원에 버리듯 맡기고 사라 졌습니다. 샤넬은 답답한 수녀원에서 도망쳐 가수가 되고 싶어 카바레에서 부르던 노래 가사에서 '코코'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샤넬은 그 당시 부자 애인의 별장에서 지내며 오직 부자 남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여인들을 보며 경제적 독립이 가장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여 애인의 후원으로 수녀원에서 배운 바느질 솜씨와 간편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사업에 성공을 하게 되지요. 그러자 애인에게서 독립하고 의복 사업에 뛰어들어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어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사교계의 거물이 됩니다.

 

  로랑생은 당대 파리 사교계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초상화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샤넬도 자신의 초상을 의뢰했습니다. 로랑생은 무대와 의상 디자인에서도 재능이 남달라 샤넬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주문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923년에 <코코 샤넬 초상> 이란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자만 샤넬은 로랑생에게 <코코 샤넬 초상>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부유한 샤넬은 그림 값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샤넬은 왜 자신이 의뢰한 작품을 되돌려 보냈던 것일까요?  샤넬은 자신을 사교계를 휩쓴 멋지고 성공한 여자로 그려주기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연약하고 우울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상생도 되돌아온 그림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샤넬이 거부한 초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넬을 대표하는 초상화가 되었습니다.

 

마리 로랑생이 그린 &lt;코코 샤넬의 초상&gt;을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코코 샤넬 초상>  캔버스에 유채, 92x73cm,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코코 샤넬 초상>은  보라색을 주조로 해서 인물의 고급스럽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넬은 하얗고 투명한 얼굴에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앉아 있습니다. 목에서부터 아래로 흘러내린 검은색 머플러의 자유로운 선이 인물의 정서적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배경에 그려 넣은 새도 샤넬의 자유로운 성품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를 괸 오른손과 그 반대편 무릎 위에 있는 강아지는 같은 모양의 삼각형을 형성하여 인물의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른쪽 가슴의 회색 톤과 목에서부터 인물 중심부를 관통하는 검은 머플러의 조화는 검정과 흰색으로 상징되는 샤넬 디자인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로랑생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성공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몸부림치며 때론 좌절했을 샤넬의 내면을 표현했습니다. 작품 속의 샤넬의 모습은 우울해 보입니다. 가느다란 몸으로 아래를 지긋하게 내려다보는 모습이 매우 고단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로랑생은 다른 여성의 초상화에서는 온화한 표정을 주로 표현했지만 샤넬의 초상화는 왠지 모를 우울함을 더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무릎에 앉아 있는 개의 모습도 우울함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로랭상은 자신의 특유의 화풍을 통해 샤넬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샤넬은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작품값도 지불하지 않고 되돌려 보냈습니다. 화가와 패션 다지이너가 초상화를 보는 관점이 달랐는데, 누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요? 그 당시의 샤넬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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