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림중의 하나이며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많은 관심과 논란이 되었던 스페인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포스팅합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ázquez, 1599~1660)는 펠리페 4세(1621~1625) 시대에 40년 가까이 궁정 화가 겸 왕실 소유의 미술품을 관리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흔하지 않았던 왕실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면서 왕실의 초상화나 종교와 자신의 주변 세계를 작품에 담어내었습니다.
높이가 3미터에 달할 정도로 실물과 비슷한 크기의 <시녀들 Las Meninas>은 벨라스케스가 사망하기 얼마 전 예술적 기교와 영감이 절정에 올랐을 때 완성한 그의 대표작품입니다. 그림에서 화실을 비추는 빛은 오른쪽 위에서 사선으로 비쳐 들어오는 자연광입니다. 태양의 직사광선과 그림자 그리고 역광을 세심하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제가 이 그림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시녀들>이란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얼핏 보면 그림 중앙에 있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시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 마르가리타 공주가 그려져 있습니다. 완성되었을 당시 제목은 <가족 La Familia>이었는데, 지금은 <시녀들>로 불려집니다. 원래 왕실 사람만 볼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19세기 초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져 공개된 이후 많은 관심과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독특한 구도로 왕실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었습니다. 초상화를 그릴 때에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가를 바라보는 정형적인 구조를 타파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무엇보다 벨라스케스 자신이 함께 등장하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소녀는 훗날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인판타 마르가리타로 당시 다섯 살이었습니다.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공주의 표정은 어린 나이에도 왕족 특유의 당당한 표정이 느껴집니다.
그림의 왼편에 있는 시녀는 접시에 물이나 음료를 담은 접시를 건네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시녀는 공주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네요. 그 뒤의 남자와 여자는 사제와 수녀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그림 하단의 오른쪽에는 공주와 키가 비슷한 난쟁이 두 명이 개 뒤에 서 있습니다. 한 명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개의 등을 장난스럽게 밟고 있어 그림에 자연스러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방 뒤쪽 계단 위에 서 있는 남자는 의전관인데, 그는 왕실 가족의 일상생활을 감독하고 보호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스페인의 왕실 기록에도 남아 있어 누가 누구인지 모두 각각의 이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구도는 왕과 왕비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무척이나 참신하고 흥미롭습니다. 작품이 완성될 당시 제목은 <가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공주의 부모인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는 어디에 있을까요? 공주 뒤편에 있는 벽에는 거울이 하나 있습니다. 거울 속에 부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건너편에서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국왕 부부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그림 속으로 끌어드렸습니다. 국왕 가족의 초상화에는 소개해드린 시녀들이 등장할 수 없는데, 벨라스케스는 거울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 넣은 참신함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거울을 이용한 그림을 이미 포스팅했습니다(아 링크 참조). 얀 반에이크(Jan van Eyck, 1395 - 1441) 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입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결혼식 기념사진처럼 어딘가 의식다운 딱딱함이 느껴지는데 비해 <시녀들>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이 17세기 에스파냐의 왕실 소유의 미술 수집품 중 하나였다는 사실로 보아, 펠리페 4세 때 왕실 소유의 미술품을 관리하던 벨라스케스가 반에이크의 작품을 접한 후 아이디어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https://dasichae.tistory.com/208
유화로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유명한 얀 판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The Arnolfini P
유화를 사용하여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보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얀 판 에이크 의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은 현대 유화의 아버지로 알려진
dasichae.tistory.com
이러한 구도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화가가 국왕 부부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화가는 그림의 오른쪽에 긴 붓을 들고 있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화려한 옷차림의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으로 엄격한 궁정 예절에 있었음에도 국왕 부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림 속의 벨라스케스는 왕실 장식인 성 이아고(성 야고보) 기사단의 십자 문장을 달고 있는데, 실제 기사단 문장을 받은 것은 그림이 그려진 뒤 후 1660년, 펠리페 4세의 명으로 십자 문장을 그려 넣게 되었습니다
<시녀들>은 오늘날까지 서양 미술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 움직이는 인물들을 순간 포착하여 생생하게 묘사한 기법은 고야, 마네, 샤갈, 피카소 등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피카소는 <시녀들>을 모방하여 58점의 패러디 작품을 만들었을 정도로 벨라스케스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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