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오페라 부파"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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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듣고 싶은 클래식/오페라

"최고의 오페라 부파"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by 다시채 2023. 3. 28.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능과 경제적 자유를 누렸던 부로  큰 명성을 얻었던 로시니의 삶은 흥미롭습니다. 로시니의 삶과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소개하고 가장 대표적인 곡을 감상해보려고 합니다.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

   여러 분야에 작품을 남겼지만 로시니의 진가는 젊은 시절에 오페라입니다. 그는 벨칸토 창법을 활용한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벨칸토(bel canto)'는 '아름다운(bel)'과 '노래(canto)'라는 이탈리아어의 합성으로 단지 아름답게만 노래한다기보다는 성악가가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기교를 총동원해 노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시니는 1792년 4년마다 돌아오는 2월 29일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페사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도살장의 감독관이자 극장에서 호른 연주했고, 어머니는 소프라노 가수이기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성장하였습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과 달리 76세까지 살았기에 상대적으로 천재라는 이미지가 약한데, 12세에 현악 4중주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고, 14세 때 오페라를 작곡했던 신동이었습니다.
 

로시니가 앉아 있는 흑백 사진입니다.
로시니의 모습 (출처 : stock.adobe.com)


  로시니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8세에 1막짜리 오페라 [결혼 어음]이 단숨에 주목을 받게 된 때부터입니다. 그 후 로시는 오페라로 성공하여 명성을 쌓아가게 됩니다. 심지어 베토벤보다 인가가 더 높았다고 하지요. 가장 유명한 곡은 바로 [세비야의 이발사]입니다.
  

  로시니의 음악이 사랑을 받았던데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몫했습니다. 1820-1830년 유럽 사회는 무척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기에, 진지하고 심각한 것보다는 가벼운 것을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명절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세비야의 이발사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로서는 역사상 최고의 작품입니다. 오페라 부파는 무겁고 진중한 오페라와 달리 가볍고 코믹한 내용의 오페라 장르를 의미합니다. 부파는 부폰(buffon)에서 나온 말로 '광대'를 뜻합니다.
 
  로시니는  37세에 [빌헬름 텔] 이후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37년을 더 살았던 그가 젊은 나이에 작곡을 그만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너무 돈이 많았다는 것(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불어닥치는 낭만주의  음악 열풍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건강이상(요독증과 심기증과 불면증), 자신의 작품을 노래할 성악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 등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음악적인 이유와 더불어 돈이 많아 경제적 자유를 누렸기에 작곡활동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페라 작곡을 하지 않게 된 거부 로시니는 프랑스에 머물면서 미식가로서 요리책들을 출판하고 유명 예술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경제적 자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물론 종교음악과 피아노 소품곡 등을 썼습니다만...

  로시니는 13일의 금요일을 싫어하여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지내기도 했다는데, 그가 죽은 날이 13일의 금요일이었답니다. 그의 삶도 그의 오페라처럼 코믹한 인생이었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즐거운 오페라입니다. 불과 13일 만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은 이 오페라는 [결혼 어음] 등의 다른 작품에 있던 곡들을 가져와 재활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Pierre Beaumarchais)가 1816년에 쓴 희극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의 특권 계급을 풍자하여 유럽에서 큰 인기가 있었는데, 각색되어 오페라 무대에 자주 올려졌습니다. 로시니가 활약할 당시에는 조반니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로시니의 오페라가 이것을 뛰어넘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816년 2월 20일 [세비야(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초연되었을 때에는 관객들의 대부분이 도중에 자리를 떠버려 오페라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대실패였다고 합니다. 파이지엘로의 추종자들이 몰려와 야유를 하며 휘파람을 불고 발을 구르면서 소동을 피웠기 때문이었습니다(파이지엘로가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음). 로시니도 선배 작곡가를 의식해서 그런지 [알마비바]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는데도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둘째 날 공연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어 저녁에 사람들이 로시니에게 몰려와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이발사’는 피가로입니다. 사실 두 작품의 피가로는 동일 인물입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속편이 [피가로의 결혼]입니다.

 

2023.05.13 - [함께 듣고 싶은 클래식/오페라] -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공연금지된 것을 오페라 부파로 탄생시킨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며 사람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오페라, 또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의 후편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

dasichae.tistory.com

 

   오페라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마을의 아름다운 처녀 로지나는 돌아가신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은 아름다운 귀족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재산을 관리해 주는 후견인 바로톨로라가 있었는데, 그녀와 결혼하여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갑자기  로지나에게 마음을 빼앗긴 청년 알마비바 백작이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바로톨로라가 가로막습니다. 알마비바는 피가로에게  로지나의 주위를 맴돌다가 이발사 피가로를 만나 도움을 청합니다. 피가로가 뛰어난 활력을 하여 마침내 로지나와 알바비바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Tips!

 
  제1막에서 “피가로, 피가로”하는 ‘나는 이 거리의 제일가는 이발사’(Largo al factotum)가 가장 유명합니다. 피가로 자신이 얼마나 마을에서 잘 나가는 일꾼인지를 의기양양하게 노래합니다. 쉼 쉴 틈 없이 빠른 음악과  익살스러운 바리톤의 연기가 아주 매력적입니다.

  페테르 마테이(Peter Mattei)가 피가로 역을 담당하고 Maurizio Benini의 지휘한 메트로폴리탄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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