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수난곡은 원래 예배용 음악으로 만들어졌지만, 종교를 초월하여 감동과 울림을 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랑을 받는 곡이며, 바흐가 모든 기악 지식과 성악 기법을 녹여내 만든 필생의 역작입니다. 수많은 음악학자들이 바로크 시대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작품입니다.
* 이 글은 마태수난곡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특징, 구조 등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후속편인 "마태수난곡 하이라이트 감상하기"를 통해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
바흐는 독일 작센주 아이제나흐에서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암부로지우스의 여덟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바흐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시작하여 평생 주로 교회와 궁정에서 활동하며 1,000곡 이상의 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종교음악을 JJ(Jesu, Juba, 예수여, 도와주소서)로 시작해서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로 끝맺었고, 기악곡과 춤곡 등 세속음악에도 악보의 끝에 SDG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며, 250여 년 동안 약 50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명문 가문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바흐의 음악은 당대는 물론 19세기까지 그 진가를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의 연구논문에 의해 바흐를 재평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마태수난곡(St. Matthew Passion)
(1) 오페라와 다른 오라토리오
마태수난곡은 신약성경 마태복음서를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룬 오라토리오(Oratorio)입니다.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독창, 합창, 관현악이 모두 등장합니다. 하지만 오라토리오는 무대 연출이나 연기가 없습니다. 오페라에 비해 합창의 비중이 더 크고, 합창과 아리아 사이에 줄거리를 설명하는 해설자(복음사가)가 등장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2) 수난곡 형식의 오라토리오
고대 기독교에서 성경에 기초한 수난곡 형식이 존재하였는데, 마태수난곡은 전통 수난곡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당시 수난곡은 예수께서 체포당하시기 전까지를 1부, 체포 이후 죽음 까지를 2부로 구성하였는데, 1부와 2부 사이에는 설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태수난곡은 내용을 설명하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부르기 때문에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분류할 할 수 있습니다.
(3) 바흐의 수난곡들
바흐가 작곡했다는 수난곡은 복음서의 종류대로 4개였다고도 하고 다섯 개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현재는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 그리고 [마가수난곡] 한 악장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태수난곡]이 [요한수난곡]보다 규모도 더 크고, 음악적으로도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4) 마태수난곡 개요
마태수난곡은 전곡은 68곡으로 연주 시간이 3시간에 가까울 정도의 대작입니다. 전 곡이 78곡으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곡이 생략되거나 추가된 것이 아니라 곡을 넘버링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신전집인 68곡을 주로 사용합니다.
(5) 마태수난곡 구조
마태수난곡의 구조를 이해하면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성경의 내용을 말해주는 사람과 성경에 기록된 인물과 군중들이 독창이나 합창으로 노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개인이나 공동체(교회)의 반응을 독창이나 합창으로 표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복음사가(Evangelist) : 마태복음의 저자로, 성경 내용을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성악 창법) 형태로 소개하며 설명합니다.
- 성악 솔리스트 : 예수 등 성경인물을 담당하기도 하고 3인칭 관찰자로서 자신의 신앙 감정을 표현합니다.
- 합창(코랄) : 성경의 제자들이나 군중들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공동체(교회)로서 종교적 의미를 해석하거나 표현합니다.
- 복음사가는 테너로, 예수는 베이스로 노래합니다.
(6) 이중 오케스트라 및 합창
마태수난곡은 지휘자 양쪽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각각 자리합니다. 2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각각 분리 배치되어 연주하는 “이중 오케스트라 및 합창”의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는 곡의 입체감과 극적 효과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음향감은 실제 공연장에서 체험할 수 있지만 레코딩된 음원으로는 재현되기 힘들다고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구조를 사용하면서도 바흐가 곡을 배치하는 균형이 놀라울 정도로 세심하다고 합니다.
아래는 유튜브에서 캡쳐한 현재의 성 토마스교회 내부 사진인데, 지휘자 앞쪽과 뒤쪽에 성가대가 보이네요.
(7) 마태수난곡의 음악적 특징
바흐는 음악적으로 상징적이고 묘사적인 기법을 총동원하여 다채로운 표현을 했습니다. 두려움과 고통, 슬픔과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가 나오면 불협화음과 반음계적 진행을 통해 불안감과 애절함 같은 감정을 나타냈었습니다. 예수가 채찍질 당하는 장면에서는 날카로운 부점 리듬을 통해 채찍질로 피투성이가 된 예수를 묘사하고, 천둥 번개가 치는 부분에서는 빠른 반주로 긴장감을 자아냈습니다.
예수가 말씀을 전하는 대목에서는 줄곧 현악이 은은하게 감싸면서 일종의 후광 효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신이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호소하는 61번 곡만은 예외적입니다. 여기서는 현악도 침묵에 빠져듭니다. 음악을 통해서 후광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8) 마태수난곡 초연과 그 이후
1729년 4월 15일 성금요일에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바흐 생전에도 라이프치히 이외의 도시에선 연주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마태수난곡은 3시간 정도의 연주 시간과 2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각각 필요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런 대곡을 준비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바흐도, 마태수난곡도 역사에서 잊혀져 갑니다.
(9) 멘델스존과 마태수난곡
마태수난곡은 멘델스존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멘델스존은 14세(12세?)때부터 이 곡을 연구하여 20세 때 연주하려 합니다. 하지만 바흐 신봉자였던 그의 스승 첼터마져도 마태수난곡 연주를 반대했습니다. 그렇게 길고 고루한 음악을,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사라진 곡을 누가 들으러 오겠냐고.... 하지만 멘델스존은 포기하지 않고 거의 2년간 리허설을 통하여 1829년 3월 11일(1827년 설도 있음) 직접 지휘하여 공연을 했습니다. 마태수난곡이 초연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에....
결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초연 당시 관객들은 지금까지 들었던 음악과 별 다른 것이 없이 좀 스케일이 큰 것으로 받아드렸습니다. 하지만 연주를 반대했던 첼터는 자신의 친구인 괴테(1749~1832)에게 이날의 연주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자랑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멘델스존을 통해 마태수난곡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후, 바흐의 첫 전기가 출판되고, 그의 곡 전집이 나왔으며 바흐협회가 창립되게 되지요. 마태수난곡은 종교음악이지만 바흐의 음악적 재능이 돗보이는 '인류 유산’으로 꼽히는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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