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우리는 세잔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사과와 오렌지>을 한번 살펴볼까요?
지금까지 미술 작품을 포스팅하면서 가장 어렵게 느껴진 것이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의 <사과와 오렌지 Apples and Oranges>이라는 정물화입니다(현대 미술은 더 어렵겠지만). 관련 책을 읽으면서 어렵게 느껴져 미술을 전공한 가족에게 물으니 철학적인 부분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하더군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원기동과 구와 원뿔로 해석한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그렸으니 철학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한 개의 사과로 파리(Paris)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라는 세잔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1870-1943)
여담이지만 오늘날에는 유명한 사과가 넷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에 하나를 더해야 하는데 바로 애플의 사과입니다.
세잔은 270점이 넘은 정물화를 남겼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사과입니다. 세잔이 사과에 집착한 이유는 그기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매우 느렸고 사과가 아주 흔한 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집요하게 그리려다가 사과가 썩어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여 그려진 세잔의 사과는 솔직히 먹고 싶거나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세잔과 오랫동안 우정을 쌓았던 프랑스 자연주의문학의 대가 에밀 졸라(1840-1902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졸라는 1886년 <작품>이란 소설에서 세잔을 재능도 없으면서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힌 화가 클로드 랑티에로 묘사하였는데, 이를 알게 된 세잔은 졸라에게 편지를 보내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세잔은 멈추지 않습니다. 정물화는 소재 자체의 본질보다 상징성이 강했고, 사진처럼 똑같은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시대에 세잔은 자신이 보고 느낀 사과를 계속 그렸습니다. 그는 인상주의처럼 빛에 따라 색이 변하고 시간에 따라 모양이 변해가는 사과를 그렸으나 다른 점은 사과의 빛과 시간에 따른 사과의 모든 면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과와 오렌지>라는 작품은 무려 6년이란 긴 시간을 들여서 완성되었습니다. 전통적인 명암법과 원근법을 탈피한 이 낯선 그림은 비평가들에게 비난을 쏟아내었지만 현대 미술이 탄생할 수 있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과와 오렌지>라는 작품 속에 소파인지 테이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가구 위에 하얀 천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위로 사과와 오렌지, 접시와 물병이 보입니다. 작품 전체의 이미지는 조화로우며, 정물들 가운데 과일들은 제각각 특색을 지녔고, 색채는 미묘한 차이로 인해 화려하지만 차분합니다. 그림의 구도는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공간은 앞쪽에서 뒤로 밀려 올라가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시점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림과 다릅니다. 이 그림은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여러 개의 시점으로 그려졌습니다. 중앙에서 약간 왼쪽에 보이는 접시와 사과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려진 반면, 오렌지를 담은 그릇과 옆 물병은 옆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졌습니다. 전통적인 원근법의 원리는 하나의 시점으로 그려야 하는데 세잔은 다중 시점을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각 소재가 지닌 형태적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세잔의 작품이 없었다면 현대 미술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 있습니다. 세잔의 그림은 현대 미술의 양대산맥인 야수주의와 입체주의(큐비즘)에 모두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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