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화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그린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렘브란트(H. van Rembrandt, 1606〜1669)와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입니다. 렘브란트는 캔버스에 그린 자화상이 50〜60점 정도인데, 종이, 판화, 데생까지 모두 더하면 100여 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반 고흐는 35점의 자화상을 그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1년에 한 점 이상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흐는 1886-1890년 사에에 35점을 그렸고, 심지어 아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귀가 잘린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도 했습니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에 초상화는 자신의 모습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귀족이나 신흥계층의 부자들이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세상에 남기기 위하여 초상화를 화가들에게 주문하였습니다. 화가들에게 초상화는 돈을 벌기 위한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화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기 위하여 자화상을 그렸을까요? 그렇다면 많은 자화상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이 화가들은 많은 수의 자화상을 그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렘브란트가 화가로서 명성을 얻어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음에도 자화상을 그린 것을 보면 돈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화가들이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주문받은 초상화와 달리 화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마음껏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상화를 주문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어떠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램브란트의 <야경>입니다. 초상화는 권위 있고 근엄하게 그려져야만 했는데 주문자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화가의 자신의 초상화는 어느 누구의 요구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창의성과 표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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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물화를 그리기 위하여 가장 구하기 쉬운 모델이 화가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화가의 요구대로 포즈를 취해 줄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인물의 다양한 표정의 변화를 관찰하고 표현하는 화법을 실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전문 모델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화가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가장 좋은 방편이 되었습니다.
셋째, 화가들의 자화상이 많은 이유는 경제적인 부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가난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난한 화가들은 전문 모델을 고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며 습작을 하게 되면 경제적 부담 없이 자신의 화법을 발전시킬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참고적으로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는 여성의 심리를 잘 이용해서 모델비용을 아끼는데 뛰어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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