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의 아틀리에> 쿠르베가의 가장 좋아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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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화가의 아틀리에> 쿠르베가의 가장 좋아했던 작품

by 다시채 2024. 4. 29.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가장 좋아했던 자신의 작품인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작품을 포스팅합니다.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비교적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평탄하게 화가가 되었지만 그는 소외된 노동자들의 일상을 그렸던 사실주의 화가였습니다. 이런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작품이 너무 큰 데다 경건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출품조차 거절당하자 박람회장 옆에 가건물을 세워 <화가의 아틀리에><오르낭의 매장> 60여 점으로 개인전을 열면서 미술계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쿠르베는 천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를 그릴 수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쿠르베는 종교화나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 없습니다.

 

  <화가의 아틀리에>는 귀스타브 쿠르베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한 작품입니다. 정식 제목은 <화가의 아틀리에, 나의 7년에 걸친 예술 생활을 요약하는 사실적 알레고리> The Painter's Studio: A real allegory summing up seven years of my artistic and moral life입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표현 중 '알레고리'는 도상과 같은 개념입니다. 수많은 도상을 통해 쿠르베는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생각보다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lt;화가의 아틀리에&gt;라는 작품을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화가의 아틀리에, 1855년,  361x598cm, 오르세 미술관

 

  쿠르베는 당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세상을 이 그림 속에 담으려 했습니다. 그림의 맨 중에는 쿠르베가 앉아서 농촌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르베의 왼쪽과 오른쪽에 여러 사람의 모습이 나뉘어 있습니다.

 

  농촌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보여줍니다. 그의 등 뒤에는 누드의 여인 모델이 보입니다. 또한 화가의 앞쪽에는 어린 소년이 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드의 연인은 영감을 의미하고, 어린 소년은 순수를 의미하는데, 이는 예술에 필요한 두 가지 요소라고 해석합니다. 여인을 진실로 소년을 창조의 상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드의 모델 여인은 전통예술의 상징으로 해석하여 쿠르베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와 다른 그림을 추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가의 양쪽에는 여러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왼쪽에는 젖을 먹이는 여인, 옷감 파는 사람, 어릿광대, 농민, 실업자, 가톨릭 신부, 개를 데리고 있는 사냥꾼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쿠베르의 친구, 미술 관련 종사자들, 문인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오른쪽에는 상류층 사람들을 왼쪽에는 하류층 사람들로 해석되었습니다. 왼편에 그려진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반면, 오른편에 그려진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이런 해석도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왼쪽에 부르주아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은 아닙니다. 쿠르베가 그의 친형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양쪽에 있는 사람들의 의미가 확실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쿠르베의 형이 이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자, 쿠르베는 “제 그림의 오른쪽은 생명을 먹고사는 사람들이고, 왼쪽은 죽음을 먹고사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화가의 오른쪽 상류층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쿠르베의 친구들, 쿠르베를 후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맨 오른쪽에는 화가의 절친한 친구이자 영향력 있는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앉아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검은색 정장 차림에 신사 모자를 쓴 사람은 부르주아입니다.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으니 살이 찐 모습입니다. 개는 충성을 상징하는데, 개는 바로 신사 모자를 쓴 사람은 부르주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 3(1808-1873)입니다.

 

  자신이 나폴레옹의 조카로 18482월 혁명 이후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는데, 1851년에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에 가까운 대통령이 되었으며, 1852년에는 프랑스의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부동산 투기, 저질 대중문화, 제국주의의 확장 등 사치와 향락의 문화로 점철된 부르주아 문화가 바로 나폴레옹 3세 시대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축 처진 모습입니다. 해골 아래의 종이에는 ‘Journal’란 글씨가 보이는데 당시 나폴레옹 3세를 찬양하고 옹호한 언론사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해골은 언론에 대한 비판을 의미합니다.

 

  충성을 상징하는 또 다른 개는 쿠르베와 오른쪽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듯합니다. 작품 속의 두 마리의 개는 프랑스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쿠르베를 자세히 보면, 황제에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프랑스를 이끌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듯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폴레옹 3세가 쿠르베의 이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잘 그린 그림이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이런 황제의 말을 전해 들었던 쿠르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본인의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칭찬을 했던 황제에 대하여 얼마나 통쾌하였을까요? 이러한 에피소드 때문에 쿠르베는 이 작품을 자신의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며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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