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제 위하여>에서 베토벤이 사랑한 엘리제는 누구?
본문 바로가기
Chinese (Simplified) English Italian Japanese Korean Portuguese Spanish
함께 듣고 싶은 클래식/독주곡

<엘리제 위하여>에서 베토벤이 사랑한 엘리제는 누구?

by 다시채 2024. 3. 2.

  베토벤이 작곡한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곡에 언급된 엘리제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니나니나 니 고릴라다~~" 이것을 기억하시죠? 초등학교 때부터 알게된 너무 유명한 곡입니다. 그래서 곡 자체에 대한 설명 보다는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엘리제가 누구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베토벤이 사랑한 여인은 대부분 그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베토벤은 만나는 여성들과 쉽게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성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여성들도 비록 베토벤이 키가 작고 매력적이지 못하였을지라도 그에게 있는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가졌기에 호감을 느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피아노라는 감성적인 매개체를 통해 베토벤과 그가 레슨 했던 귀족 여인들은 사랑의 불꽃이 튀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19세기 사회는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의 사랑의 마음을 알고 결혼을 잠시 고민했던 여인들이 있는데, 1994년 개봉한 영화 제목처럼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이었습니다.  
 

테레제 말파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테레제 말파티



  그중의 한 여인이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 Für Elise>를 헌정받은 여인입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베토벤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엘리제’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았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이 곡을 바칠 정도였다면 꽤 깊은 관계였을 텐데도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제가 누구인지를 놓고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먼저 독일의 음악학자이자 작곡가인 클라우스 코피츠는 요한 네포무크 훔멜(체르니와 멘델스존의 스승)의 아내이자 소프라노 가수였던 엘리자베스 뢰켈이라고 합니다.  뢰켈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여주인공을 맡는 등 베토벤과 좋은 교류를 이어간 음악가였는데, 그녀의 애칭이 엘리제였다고 합니다.

  또다른 주장이 현재는 정설처럼 널리 받아드려지고 있습니다. 루트비히 놀(Ludwig Nohl, 1831-1885)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을 발견하고 출판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음악 학자입니다. 그가 베토벤의 자필 악보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출판이후 안타깝게도 그 악보가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독일 음악학자 막스 웅거(Max Unger, 1883-1959년) 박사는 필적을 철저히 연구한 후 원래 <테레제를 위하여>가 되어야 할 곡명이 <엘리제를 위하여>가 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런 추정의 근거는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악보가 테레제 폰 드로스딕이라는 귀부인의 편지를 넣은 상자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테레제 폰 드로스딕의 결혼 전 이름은 테레제 말파티(Therese von Malfatti, 1792-1851)로, 1810년경에 베토벤(1770-1827)이 고향인 본에서 세례 증명서까지 떼다가 청혼을 했다가 거절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베토벤과 친교가 있던 빈의 대지주의 딸로서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또한 베토벤의 주치의였던 요한 말파티 박사의 조카이기도 했습니다.
 

 


  1810년 봄 테레제의 아버지는 친구들과 사업상의 지인들을 초대했습니다. 베토벤은 테레제를 위해 짧은 피아노곡 바가텔(Bagatelle, 짧고 아담한 기악곡에 이런 이름을 붙임)을 작곡했습니다. 바가텔에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들어 있었는데, 베토벤의 계획은 손님을 앞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청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이 독한 파티용 펀치를 마시고 너무 취해서 이 곡을 연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청혼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은 이런 상태에서 베토벤이 거의 읽기 힘든 “Für Therese”라고 썼습니다.

  그녀가 사망하자 그녀의 소지품에서 이 곡의 원고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Für Elise"는 제목으로 표시되어 그 이후로 <엘리제를 위하여>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1810년 17세였던 테레제는 20년 넘는 연상의 베토벤과 결혼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테레제는 베토벤의 구혼을 받은 지 6년 후인 1816년에 헝가리 백작 요한 빌헬름 폰 드로스딕(Johann Wilhelm von Drosdick)과 결혼했습니다. 테레제의 집안에서는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가로서의 그를 존경했지만 결혼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랑스럽고 기억에 남는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어린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연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단 한 번도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이 곡을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합니다. 슬프게도 베토벤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 곡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혹시 그 이유가 '엘리제'라는 여인을 향한 계속된 사랑의 표현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상상을 하면서 곡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시도일 듯 합니다.

 

감상하기!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감상해 보시죠.  
  불가리아의 피아니스트 게오르기 체르킨(Georgii Cherkin)와 Classic FM Orchestra의 연주입니다.

https://youtu.be/e4d0LOuP4Uw?si=6dkzh9jYE3YWYmq7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