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일으킨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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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일으킨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by 다시채 2024. 2. 10.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은 미술사적으로 신고전주의의 시작을 알리고 프랑스 대혁명에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화가 개인에게도 변화를 가져다준 유명한 작품입니다.


  1776년 로마대상을 받은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로마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고전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신고전주의 예술가입니다. 다비드는 프랑스혁명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유명하며,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궁정 화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비드의 대표작품 중의 하나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루이 16세가 호라티우스 가문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아 완성한 작품입니다. 과거 로마의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세 명의 형제가 승리를 맹세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기원전 7세기경 로마 왕국과 알바 왕국은 영토 문제로 오랫동안 싸우고 있었습니다. 소모적인 전쟁이 오래 지속되자, 두 나라는 세 명의 전사를 뽑아 결투한 결과에 승복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로마는 호라티우스 형제를 뽑았고 알바는 큐라티우스 형제를 뽑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두 집안은 결혼과 약혼으로 사돈지간이었습니다.

 

  결국 로마의 호라티우스 형제가 승리하게 되는데 결투에 참전한 6명에 단 한 명만 살아 돌아옵니다. 여동생인 카밀라는 남편을 죽인 큰 오빠를 고소하게 되고, 분노한 오빠는 여동생을 칼로 죽여 살인죄로 기소가 됩니다. 당시 친족 살인죄는 엄중히 처벌하였는데, 아버지가 아들이 로마를 위해 공헌한 것을 감안하여 용서해 달라는 탄원을 합니다. 그 결과 아들은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사건들을 한 장면으로 남겨야 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다비드는 고심을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전투에 나가기 직전 아버지 앞에서 맹세하는 장면입니다. 

 

다비드의 대표작 &lt;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gt;를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784년, 330x427cm,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화면의 구성은 도리아식 아치가 삼등분되었고, 각각의 아치마다 세 형제들, 아버지, 그리고 여인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화면의 중심에 정열을 상징하는 빨강 망토를 걸친 옷차림에 묵직해 보이는 칼 세 자루를 높이 치켜든 노인이 바로 아버지입니다. 그와 마주 서서 힘차게 팔을 뻗어 맹세하는 결연한 모습은 숭고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세 아들의 손과 빛나는 칼은 밝은 햇빛 때문에 유난히 두드러져 보입니다.

  반면 왼편에 있는 여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중심이 무너진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여인들 중에 한 명이 약혼자를 잃게 될 카밀라이며, 다른 한 여인이 이 집의 며느리이자 큐리아티우스 가문의 딸인 사비나입니다.

 호라티우스 형제 어머니의 옷자락 아래 움츠리고 있는 어린아이들 위로 남자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다. 큰아이는 분명히 겁에 질려하면서도, 할머니의 손을 밀어내며 칼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화가의 서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틴어로 “1784년 다비드가 로마에서 제작하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작품의뢰를 받아 완성된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미술사적으로 신고전주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고, 프랑스 대혁명의 메시지의 상징적은 작품이 되었고, 화가 자신에게도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하는 변화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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