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레의 만종(Angelus)에서 부부는 무엇을 기도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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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밀레의 만종(Angelus)에서 부부는 무엇을 기도했던 것일까?

by 다시채 2023. 9. 13.

  모네, 고흐, 이중섭 화백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준 밀레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만종]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만종]에 대한 에피소드는 부부가 무엇을 위해 기도한 것인지를 알쏭달쏭하게 만듭니다.


  석양이 물들어 가는 가운데 교회에서의 종소리를 들으며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부부. 수확한 감자 바구니를 향해 감사함을 전하는 듯 여성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고, 남성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밀레는 저녁 종이 울리면 들판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를 올리시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에서  [만종]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작 [만종 晩鍾  L’Angelus]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Jean Fran ois Millet, 1814-1875)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밀레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자랐으며, 소박하고 따스한 자신의 서정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그림들을 그려내어 농부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사회주의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밀레의 만종이란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밀레의 만종(1859년 작)

 

밀레의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전체 그림에서 하늘 보다 땅이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도를 통해 밀레는 농사, 농민, 노동에 대한 존중과 숭고함을 표현하였는데, [만종]에서도 이런 특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만종]은 보스턴의 부자 토마스 애플턴 (Thomas G. Appleton)이 의뢰한 작품인데, 그가 아일랜드 출신이라 19세기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에서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밀레는 1857년부터 1859년까지 2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지만 의뢰인은 작품을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밀레는 이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 속에 그려진 죽은 아기의 관을 본 친구가 심사과정에서의 파장을 염려하며 밀레에게 간곡하게 작품을 수정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원래 그림은 붉은 노을이 지는 저녁 들판에서 가난한 농부 부부가 죽은 아기를 묻기 전 마지막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농촌에서는 굶주림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밀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후원자 알프레디 상시에게 보낸 편지에서 돈을 벌어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자살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밀레는 원래 신앙적 경건함과 감사함을 나타내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농부들의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고, 자식이 죽어가는 동안 내내 침묵했던 신에 대하여 원망 대신 기도로써 슬픔을 극복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밀레는 고민 끝에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아기의 관을 지우고 대신 그 자리에 감자 바구니를 그려 넣게 되었습니다.  그는 멀리 교회 탑을 추가하고 그림의 이름을 가톨릭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일 기도인 [삼종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삼종기도(Angelus)는 가톨릭에서 아침, 정오, 저녁 하루에 하루에 세 번 성당 종소리를 듣고 올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당시 너무나 궁핍했던 밀레는 이 작품을 단돈 600프랑, 즉 약 12만 원이라는 헐값에 팔았지만, 그의 작품이 인정받기 시작하자 미국 미술협회가 55만 프랑에 낙찰받았습니다. 1년 후  프랑스 백화점 사장 알프레도 쇼사르가 75만 프랑을 주고 구매하여 국가에 기증하였습니다.

 
  이러한 [만종]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알려지게 된 것일까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가 이 작품에 얼마나 집착을 했는지 ‘만종’을 모티브로 삼았거나 일부 소재로 삼은 작품만 열 개는 넘는다고 합니다. 달리는 1938년에는 [밀레 삼종의 비극]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그림이 고뇌와 성적 억압의 감정을 숨긴 문화적 아이콘이라고 주장하면서 편집증적 비판적 해석을 내렸습니다.
 
  [만종]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1960년대에 루브르 박물관은 X-ray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감자 바구니 이전의 밑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형태가 불안전하여 정말 관을 그렸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 작품이 평화로운 순간을 묘사하는 그림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졌습니다.  X-ray 투시결과가 알려지자 살바도르 달리의 주장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의 책을 업데이트된 형식으로 다시 출판했습니다.
 
  밀레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부부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원래 감자 바구니였는지 관이었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숭고한 감정을 가지고 현실을 표현하는 예술을 추구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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