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유명한 명화, 천재 중에서도 가장 창의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하기 전날 밤(유월절)에, 열두 제자들과 함께 가진 저녁 식사 장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통치자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Maria Sforza, 1452-1508)는 원래 다빈치를 군사 공학자로 고용했으나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한 가운데 그림을 의뢰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수도원의 수도사들의 식당 벽화로 크가가 가로 880cm, 세로 460cm로 상당히 큽니다.
[최후의 만찬]의 특징은 인체 해부학적 연구 결과가 정확히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 그리고 움직임 등은 다빈치의 해부학적 실험 등을 통해 얻은 실재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확히 있는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가 수학적 비율에 의한 선 원근법(iner perspective)을 사용하여 입체감과 공간감 조성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전의 그림과 달리 예수의 모습에서 달리 후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의 기법상의 특징은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젖은 회벽 위에 물감을 사용해 그리는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은 다양한 색채가 가능하지 수정은 힘들고 오래 보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달걀노른자, 식초와 물감을 조합한 템페라를 마른 회벽 위에 칠하는 실험적인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이 기법은 다양한 색채와 13명 등장인물의 섬세한 묘사가 가능했기에, 다빈치의 후원자이자 의뢰자인 스포르차 공작이 매우 흡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성된 지 몇 년 후부터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탈색과 손상이 심각해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습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식당이라는 공간도 그림을 손상시키는데 일조했을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에는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세 개의 창문, 네 무리의 열두 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네 복음서,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을 각각 뜻합니다. 사방의 벽과 천장의 선 모두 예수를 향해 뻗어 있습니다. 계산의 흔적도 여실합니다. 식당의 넓은 벽면을 36개 칸으로 구획했습니다.
작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운데 앉아 있고, 열두 제자가 3명씩 4개 그룹으로 나뉘어 예수의 양쪽에 각각 두 그룹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 중 한 명이 배신할 것이라는 예고의 말을 하고 차분함을 유지합니다. 예수의 머리와 뻗어 있는 팔이 만드는 이등변삼각형이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제자들은 일어서고 격한 몸짓으로 놀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나다니엘(바돌로매)은 벌떡 일어났고, 야고보는 한 손으론 두 손을 번쩍 든 안드레를 달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베드로를 말리고 있습니다. 왼쪽 두 번째 그룹의 베드로는 배신자를 처단하려고 칼을 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앞의 배신자 유다는 놀래서 빵을 떨어뜨렸고 돈주머니를 오른손으로 꽉 쥐고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요한은 절망하며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작품들은 유다를 공간적으로 다른 제자들과 분리시키고 있는데, 다빈치는 같은 식탁애 자리하게 했습니다.
오른쪽 맨 끝에 있는 세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맨 끝자리의 가나안인 시몬은 옆의 다대오와 푸른 옷을 입은 세리 마태에게 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 바로 왼쪽에 있는 세 사람 표정이 흥미롭습니다. 예수의 상흔을 확인하기 전까지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는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올리고 있습니다. 그 옆의 야고보는 자신은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고 강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옆에 서 있는 필립도 역시 자신의 충성심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습니다.
화가들은 한 작품에만 수십 년을 몰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2년 9개월 동안 그렸습니다. 그런데 미술 전문가들은 다빈치가 '이 행동'만 하지 않았다면 제작 기간을 더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빈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마시기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그림은 그리지 않고 먹기만 한다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러자 다빈치는 "그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라고 다빈치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다빈치는 이렇게 먹고 마시면서 그림에 담을 음식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빈치는 2년 6개월 동안 먹고 마시면서 음식을 추렸다고 합니다. 그는 수도의 술 창고가 바닥날 때까지 포도주를 마셨다고 하지요. 포도주를 입으로 흘리면서 색깔은 물론, 마신 직후 잔 안에서 액체가 도는 흐름도 파악했다네요.
이뿐 아니라 다빈치는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를 그리기 위해서 밀라노의 뒷골목에서 흉악범이나 부장자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예수의 표정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위해 철저한 준비가 완료되면 다빈치는 특유의 집중력으로 하루에 열 시간을 연달아 붓질만 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다빈치가 화룡점정을 찍었을 때 원래 예수의 손은 텅 빈 은잔이 있었다고 합니다. "걸작이야. 특히 예수가 손에 들고 있는 은잔이 너무 섬세하고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어."라는 친구의 한마디에 은잔을 지웠다고 합니다. 예수 외에 시선이 끌리는 게 있으면 안 되고 오직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다빈치의 구상이었던 것이지요.
이와 같은 다빈치의 노력과 천재적인 재능에 의에 [최후의 만찬]이란 걸작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은 예수 당시의 유월절 만찬 식사방법과는 달랐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유월절 저녁에 아래의 그림처럼 식사를 했습니다.
로마 귀족들은 누워서 식사를 즐겼습니다. 이른바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이라고 불리는 긴 의자를 사용하였는데, 이 의자는 가로로 길쭉하면서 폭도 널찍하고 등받이가 없어서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한 면을 비워둔 이유는 시중을 위해서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행했던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식탁은 ‘ㄷ’ 자 모양이었습니다. 원래 유월절 식사는 빨리 애굽에서 떠나야 했기에 서서 급하게 먹어야 했는데 로마의 3면 테이블이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림에서는 예수가 가운데 위치하고 있지만 원래 헤드 테이블은 왼쪽이고 오른쪽은 말석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는 왼쪽 중앙에 비스듬히 누워 식사한 것이 가장 사실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그림 자체가 손상되기 쉬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여러 차례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을 맞았는데 수도원장이 벽화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아둔 덕분에 보존되었습니다. 1970-1999년에는 최첨단 장비를 총동원하여 복원작업을 실시하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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