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피카소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이사할 때 전원불량이 되어버린 로스터기를 수리하려 갔었습니다. 사장님이 미술을 전공하신 분인데 로스터기 개발자가 되신 분이지요. 오랜만에 이 분을 만나게 되니 최근 미술에 대한 포스팅을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짧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 번 이런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에 회화는 주로 어떤 그림이었을까요? 사진을 찍어서 남길 수 없었던 시기의 회화의 중심은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인간의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와 그림이 어떠한 인물, 사건이나 사물을 기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o, 1881-1973)는 평생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습니다. 3만여 점이 넘는 그의 작품과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피카소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데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고 합니다. 분명 피카소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 예술가입니다.
그런데 피카소가 한때 사진기의 등장으로 인해 회화가 소멸하게 되지 않을까 진지하게 걱정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우려를 노르웨이 출신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뭉크는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며 웃어넘겼다고 합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피카소는 화가로서 밥줄이 끊길지 모른다며 진지하게 걱정했습니다. 사진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독특하고 파격적인 기법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또 시도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움을 추구한 결과로 탄생한 작품 중의 하나가 [꿈]입니다.
[꿈]은 1932년 1월 어느 나른한 오후 당시 24세의 젊은 여인 마리 테레즈 발터(Marie Therese Walter, 1907~1977)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딱딱하고 분할된 형태에서 벗어난 가느다란 곡선의 라인과 부드럽고 서정적인 느낌이 강조된 작품입니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에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화가는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는 모델을 서다 졸렸던 것일까요? 머리는 오른쪽 어깨에 기울이고 두 손은 복부 쪽에 모은 채 잠이 들었네요. 가슴 한쪽을 살짝 드러낸 모습에서 피카소는 욕정을 느꼈는지 마리의 왼쪽 얼굴을 자신의 남근으로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꿈"이란 제목은 잠든 마리의 모습을 보고 욕정을 느끼는 피카소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첨언하자면, 피카소가 마리 테레즈를 처음 만난 것은 1927년으로 그의 나이 45세, 마리 테레즈는 고작 17세의 건강하고 관능미가 넘치는 소녀였습니다.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를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보고 말을 건 뒤 서점에 데리고 가서 자신에 대한 책을 보여주고 6개월 동안 구애를 했습니다. 당시 피카소는 러시아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Olga Stepanovna Khokhlova, 1891-1954)와 결혼한 유부남이었지요.
마리는 이런 무례한 중년 피카소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수영과 등산을 좋아하는 십 대였을 뿐, 예술에 대해선 전혀 몰랐고 피카소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초현실적인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가 아주 유명한 유부남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피카소는 “우리는 함께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계속 속삭이며 마침내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마리는 피카소의 집 근처에 살며 8년 동안 비밀스런 관계를 유지하다 도라 마르라는 여인의 등장으로 버림을 받게 되었고, 피카소가 죽은 후 4년 만에 자살한 비운의 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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