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음악가들을 천재적인 위대한 음악가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활동했던 당시에도 이러한 사회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았을까요? 클래식 음악가들이 고용인에서 프리랜서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는 신분질서가 분명한 절대왕정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 문화의 중심지는 교회와 궁정이었는데, 음악가들은 교회, 궁정, 시에 소속되어 교회, 왕, 귀족들의 후원으로 생활을 했던 고용인에 불과했습니다. 교회와 궁정에는 청소, 요리, 정원, 의상 등을 담당하는 많은 고용인들이 있었는데,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바흐는 음악을 담당하는 고용인이었습니다.
바흐는 1723년부터 1750년까지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토마스 교회와 학교의 칸토르(Cantor, 음악감독)로 일했는데, 그 고용계약서를 보면 책임자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도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굴욕적인 조항도 있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헨델과 달리 바흐가 생전에 독일 밖으로 한 발도 나가지 못했던 이유가 이런 조항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고전주의 시대에도 음악가들의 계속 고용인에 불과했습니다.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30년 이상 오랜 시간 동안 에스테르하지(Esterhazy) 가문의 궁정악장이란 고용인으로 살았습니다. 물론 니콜라스 후작은 하이든의 음악에 만족하여 하이든의 집이 두 번이나 화재가 났을 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특별한 대우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이든이 일할 때는 반드시 하인 복장을 해야 했고, 고용주의 허락 없이 여행이나 휴가도 마음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음악가들이 철저하게 고용된 '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고별 교향곡>입니다. 고용주가 여름 별장에서 8개월이 넘도록 머물게 되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휴가를 가고 싶었지만 휴가를 요청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이든은 교향곡 45번 "고별"의 마지막 4악장에서 연주자가 한 사람씩 퇴장하게 하는 작곡을 통해 고용주에게 우회적으로 단원들의 마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도 고용인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독립적인 프리랜서가 되기 위한 시도를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유명했던 모차르트는 전 유럽을 다니며 각국의 군주를 알현했고 교황에게서 황금박차 훈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의 고용인에 불과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연주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솜씨를 뽐내고 싶었지만 대주교는 자신의 ‘하인’이 마음대로 다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안정적인 궁정음악가의 직업을 포기하고 비엔나로 와서 작곡활동의 수입만으로 살아가려고 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수입이 적어서가 아니라 모차르트의 씀씀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모차르트가 죽을 때까지 경제적인 어려움과 빚더미 속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실패한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평생 그 누구에게 고용된 적이 없는 독립적인 음악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고향 본을 떠나 비엔나에서 1827년 사망했을 때 상속자인 조카 카를이 물려받게 된 유산이 약 1만 굴텐이라고 합니다. 1 굴덴은 현재 가치로 약 30유로에 해당하는데,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글을 작성하는 시점으로 4억 2천6백만 원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달리 상당한 재산을 남긴 성공적인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베토벤이 사랑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수학적인 계산 능력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베토벤은 돈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철저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값어치를 직설적으로 매겼다고 합니다.
또한 가지 더 아이러니한 것은 베토벤은 연금 수입, 악보 출판, 연주회, 레슨 등을 통해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는데 베토벤은 주변에 항상 돈이 부족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조카 카를의 양육을 둘러싼 법정다툼과 교육비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부족하다고 투덜댔던 베토벤이 4억이 넘는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 계산을 잘못해서 그런 것일까요? 만족할 수 없는 탐욕에서 나오는 말이었던 것일까요?
참고적으로 음악가들의 수입, 재산, 사치성향 등을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보세요.
2023.07.26 - [클래식 잡학 사전] - 클래식 작곡가들 수입과 사치성향, 자산도, 후대에 끼친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클래식 잡학 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하게 몰랐던 소나타(sonata) 이해하기 (297) | 2023.10.05 |
---|---|
도레미파솔라시도(음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67) | 2023.10.01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베이스의 세분화된 종류들 (292) | 2023.09.17 |
음악용어는 왜 이탈리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을까 (313) | 2023.09.08 |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차이는? (363) | 2023.08.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