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레미파솔라시도(음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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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잡학 사전

도레미파솔라시도(음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by 다시채 2023. 10. 1.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은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라는 5음계로 되어있지만, 서양의 음악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라는 7음계로 되어있습니다. 이번에는 서양의 7음계가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양의 7음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나오는 도레미송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을 마리아와 아이들이 알프스 언덕과 잘츠부르크 공원에서 부르던 7음계명과 비슷한 발음의 단어와 연결한 노래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도'는 'doe(암사슴)', , '레'는 'ray(빛)', '미는 'me(나)', '파'는 'far(먼)' 등 이런 식입니다.

 

  7음계도 이외 비슷한 발상으로 귀도 다레초 ( Guido d'Arezzo, 990? - 1050?)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귀도 다레초는 이처럼 서양음악사에서 기보법의 발전과 음계의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로 남아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신부이자 음악 이론가 귀도 다레초는 이탈리아 페라라 근교 폰포자의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베네딕트파의 신부가 되었는데, 당대 최고의 음악이론가이자 교육자로도 이름을 떨쳤습니다.

 

  다레초가 시창법과 새로운 기보 체계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쓴 <미크롤로구스>라는 책은 수도원의 정규 교과서로 채택되었고, 13세기에는 대학 교과서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귀도 다레초는 당시 잘 알려져 있던  성요한 찬미가 < Ut queant laxis>( 당신의 종들이 )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아래 악보에서 보시는 것처럼, 노란 동그라미 친 여섯 악절의 첫 음이 우연히 한 음씩 상행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성 요한 찬에서 여섯 악절의 첫 음이 한 음씩 상행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악보입니다.
출처 :&nbsp;wikipedia.org



<성 요한 찬미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Ut Queant laxis 당신의 종들이
     Resonare fibris 자유로이 찬미할 수 있도록
     Mira gestorum 기적을 행하시는
     Famuli tuorum 당신의 역사로써
     Solve polluti 정결케 하소서 모든 흠을
     Labii reatum 그들의 더러운 입술로부터
     Sancte loannnes. 성 요한이여

  이 곡에서 각 소절(호흡)의 첫째 음절을 따서 이를 계이름으로 지정했고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Ut, Re, Mi, Fa, Sol, La'로 6개였습니다. 나중에 성 요한의 첫 자를 따서 'Si'를 추가하여 서양음악 7음계가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계이름의 첫 소절인 'Ut'는 폐음절이라서 발음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17세기에 하나님을 뜻하는 Dominus에서 따온 'Do'로 바뀌어 지금까지 사용되는 음계명이 되었습니다.

 


  계이름의 어원을 정리하면, 도(Do)는 ' Dominus'(주님)의 첫음절, 레(Re)는 'Resonare('하나님의 울림, 음성), 미(Mi)는 `Mira gestorum(하나님의 기적), 파(Fa)는 ' Famili tuorum'(하나님의 가족), 솔(Sol)은 'Solve polluti'(구원, 하나님 사랑), 라(La)는 'Labii'(하나님의 입술), 시(Si)는 Sancte Ioannets'(요한'의 첫음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도로 시작하여 다시 도로 끝나는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일주일이 7일인 것처럼, 7음이라는 완전수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러한 음계가 창안되기 전에는 가수가 암기를 통해 성가의 멜로디를 모두 잊혀야 하기 때문에 보통 시간이 10년 이상 걸렸다고 하는데, 귀도가 창안한 음계를 통해 그 기간이 1-2년으로 단축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아주 획기적인 창안이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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