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비서로 알려진 안톤 쉰들러가 베토벤과 관련하여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쉰들러를 검색하면 베토벤의 전기를 출간한 "전기작가"로 소개합니다. 그의 책을 통해 알려진 베토벤에 대한 일화가 널리 알려졌는데, 70년대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신뢰할 수 없게 하는 엄청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베를린 훔볼트대학의 범죄학 연구팀에 의해서 안톤 쉰들러(Anton Felix Schindler, 1795-1864)의 범죄행위가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모라비아의 메들에서 태어난 쉰들러는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빈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으나, 직업적인 음악가가 됩니다. 요제프 슈타트 극장의 콘서트마스터를 역임했으며, 뮌스터와 아헨 등에서도 지휘활동을 하다가 1864년 사망했습니다. 음악가였던 그가 베토벤을 존경하고 가까이하고 싶었나 봅니다.
쉰들러는 베토벤의 일상부터 창작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증인으로 자부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1814년부터 베토벤이 사망한 1827년까지 베토벤과 친밀하게 교류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쉰들러는 베토벤이 고용한 비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급으로 비서 역할을 자원하여 1822년부터 1824년 5월까지와 1826년 말부터 1827년 3월까지로 약 3년 정도 베토벤의 잡무를 담당했습니다.
베토벤의 비서로서 베토벤의 일상에서부터 창작까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생생한 증인이라 자부했던 쉰들러는 자기 자신 속에 이상적인 베토벤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또한 자신이 베토벤에게 직접 들었다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교향곡 5번 "운명"이란 제목에 대하여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는 말했다는 출처가 바로 쉰들러입니다. [템페스트]로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17번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게"라고 말했다는 것도 쉰들러 자신의 질문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쉰들러의 증언은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 많고, 베토벤의 문서도 조작했습니다. 그가 용서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죄는 베토벤 사후, 베토벤의 대화 수첩을 수정하고 파기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아 대화를 할 때 수첩을 사용했는데(일상대화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대화도 포함되어 있음), 쉰들러가 생각하는 베토벤의 이미지에 맞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없애버렸습니다.
베토벤 전기 연구의 일인자였던 세이어(A. w. Thayer)에 의하면 대화수첩은 약 400권 정도입니다. 하지만 쉰들러는 1846년 베를린 왕립 도서관에 137권의 ‘대화 수첩’만을 매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많은 양의 대화 수첩을 파기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입니다. 그리고 베를린 훔볼트대학의 범죄학 연구팀은 자신이 베토벤과 실제 대화를 나눈 것처럼 내용을 첨가했다는 것을 추가로 밝혀내었습니다.
쉰들러는 마지막 순간까지 베토벤의 병상을 지킨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베토벤에 대한 중요한 문서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베토벤 전기까지 출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짓 증언과 서류 조작이 밝혀지자 베토벤에 대한 많은 일화가 신빙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베토벤에 관한 전기는 새롭게 출판되거나 개정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은 쉰들러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베토벤의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음악가나 예술가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쉰들러의 경우 위대한 음악가의 기록을 위조하고 파기했다는 용서받기 힘든 범죄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안톤 쉰들러가 없애버린 베토벤의 대화수첩의 리스트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베토벤을 좋아하여 무급 비서가 되고, 베토벤에 대한 책을 출간하여 돈을 번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베토벤의 이미지를 위해 조작과 파기를 서슴지 않은 것은 분명한 범죄입니다.
쉰들러는 베토벤을 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베토벤을 이용한 사람이었을까요? 베토벤을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베토벤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베토벤의 이미지를 추구하고 이득을 얻으려고 했던 것으로 발전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글을 마무리하려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떠오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하는 것은 좋지만 쉰들러처럼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은 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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