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고 있어 물과 관련된 시원한 음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헨델의 [수상음악](Water Music)입니다. 수상음악과 관련된 에피소드와 함께 이탈리아풍 춤곡인 수상음악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탈리아에 머물던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은 1710년 6월부터 독일 하노버의 카펠마이스터(궁정악장)로 일하게 되는데, 그 해에 1년간의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당시 독일 음악은 성악 위주였고 그것도 보수적인 교회음악이 주류이자 대세였기에 헨델은 마음껏 자신의 음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헨델이 영국에서 공연했던 오페라 [리날도]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휴가 기간이 끝나자 헨델은 하노버의 게오르크(Georg Ludwig, 1660-1727) 선제후 곁으로 돌아옵니다. 참고로 선제후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영주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헨델은 영국을 그리워합니다. 헨델은 1712년에 다시 한번 선제후에게 조건부 허락을 받아 영국으로 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헨델은 하노버로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크가 복귀하라는 명령을 여러 번 받았는데도 버텼습니다. 헨델은 영국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런던은 하노버와 비교하기 힘든 대도시였기에 음악산업이 발달하였고, 오페라를 정기 상연할 수 있는 극장도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을 총애하는 앤 여왕(Anne, 1665-1714)도 있었으니까요. 헨델은 2년 동안 오페라를 쓰지 않고 종교음악에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대표곡인 [테 데움]과 [유빌라테]는 모두 합창음악인데, 영국에서는 앤섬(Anthem, 가톨릭의 모테트에 상응하는 장르)이라고 합니다. 헨델이 영어로 된 가사로 작곡을 해서 앤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여왕이 주도하는 여러 행사의 음악을 담당하고, 연금까지 받는 혜택을 누리게 되지요.
결국 1713년 6월 헨델은 하노버의 카펠마이스터 자리에서 해고되었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너무 오래 런던에 머물렀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거치며 진영이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영국과 하노버가 서로 반대편 진영을 지지했었다는 것입니다. 하노버 사람들이 보기에 헨델을 좋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명색이 하노버의 카펠마이스터인데 런던에서 영국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기에 때문이죠.
그런데 다음 해 앤 여왕이 사망합니다.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영국의 왕위는 왕위 계승 서열 50위인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크에게 넘어갔습니다. 게오르크가 영국 왕 조지 1세(George 1, 1660-1727)로 즉위하면서 스튜어트 왕조가 끝나고 하노버 왕조가 시작됩니다. 헨델에게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반대편의 국가에 머물렀던 헬델을 조지 1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또한 조지 1세를 만나야 하는 헨델은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요? 결론적으로 두 사람은 화해를 했습니다. 헨델의 전기를 쓴 메인웨어링(Sir John Mainwaring)은 [수상 음악]을 왕과 헨델의 화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화해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하여 상반되는 설들이 존재합니다. 먼저 많이 알려진 대로 헨델 측에서 조지 1세의 마음을 풀기 위해 작곡을 했다는 설입니다. 헨델의 몇몇 고관 친구들은 그를 위해 국왕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고민 끝에 조지 1세가 템즈 강에서 뱃놀이 연회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수상음악]을 작곡했다는 것입니다. 템즈강에서 거행될 뱃놀이 연회에 몰래 배 한 척을 띄우고 관현악단을 여기에 태워서 헨델이 만든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이었지요. 심지어 헤델이 사비를 털어 배까지 빌렸다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헨델의 음악적인 재능을 잘 알던 조지 1세가 헨델을 곁에 둘 수 있는 명분을 쌓기 위해 수상음악을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상과 달리 조지 1세는 큰 도시에서 활동하고 싶던 헨델을 이해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헨델을 해고를 했지만 징계를 내린 기록도 없는 것으로 볼 때 헨델을 괘씸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노버 궁정이 헨델에게 밀린 급료를 전부 지불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느 쪽의 이야기가 진실일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진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헨델과 50명의 연주가들이 배에 오른 채, 왕과 귀족들이 탄 배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연주했다는 것입니다. 조지 1세는 [수상 음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램버트(Lambeth)에서 출발해 첼시(Chelsea)에 도착하는 총 1시간의 뱃놀이 동안 상행 2번 하행 1번, 총 세 번이나 더 연주를 명령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4시간 가까이 연주를 했다는 것이네요. 이게 끝이 아니라 조지 1세는 당시 헨델이 받던 연봉의 2배안 400파운드를 하사했습니다.
[수상 음악]은 말 그대로 '물 위의 음악'이라는 뜻이지 물을 묘사한 것은 아닙니다. [수상음악]은 [왕궁의 불꽃놀이]와 더불어 헨델의 관현악 모음곡을 대표합니다. [수상음악]은 20개의 소곡으로 크게 보면 모두 3곡으로 이뤄진 이탈리아풍의 춤을 모음곡입니다.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프랑스풍의 서곡(Overture)으로 시작하여 우아한 미뉴에트(Minuete), 경쾌한 부레(Bourrée), 옛 영국의 춤곡인 혼파이프(Hornpipe) 그리고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시작된 춤곡인 리고동(Rigaudon)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11번째로 등장하는 ‘알라 혼파이프’(Alla Hornpipe)입니다. '쇠뿔 나팔(혼파이프) 풍으로(알라)'란 뜻이지요. 호른의 경쾌한 울림이 물의 흐름처럼 시원하게 퍼져나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수상음악]은 연주 장소를 고려한 세심함이 돋보입니다. 배 위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 하프시코드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악기 대신 가벼운 악기만으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편성했습니다. 또한 트럼펫이나 호른처럼 음량이 큰 금관악기들을 활용해서 음악소리가 잘 들려지게 했습니다. 이런 [수상음악]의 성공 때문인지 헨델은 왕실이 야외에서 쓰기 좋은 음악을 한 곡 더 작곡했는데, 그것이 바로 [왕실의 불꽃놀이]입니다.
감상하기
[수상음악] 왕과 귀족의 야외 연회에서 연주된 행사용 음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가 지휘하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English Baroque Soloists)의 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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