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의 [볼레로]를 소개합니다. 작곡가나 제목은 모를지라도 아주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 중 하나로 단순하지만 중독성 있고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볼레로]는 라벨의 음악적 재능이 응축된 걸작입니다.
모리스 라벨(Maurice Joseph Ravel, 1875-1937)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바스크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스위스계 프랑스인이자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바스크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1889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라벨은 1900년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이 지원되는 로마대상에 도전하지만 낙선했습니다. 라벨은 5년 연속 낙선했는데, 그 이유는 심사위원들은 보수적이었고, 라벨은 지나칠 정도로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1905년에는 심사를 둘러싸고 심사위원들끼리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파리 음악원원장이 사임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라벨은 재즈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라벨은 러시아의 유명 발레리나 이다 루빈스타인(1888~1960)의 의뢰를 받아 [볼레로 Bolero]를 작곡하게 됩니다. 볼레로는 3박자를 기초로 한 스페인 춤곡의 한 종류입니다. 이 춤곡은 한 무용수가 술집 탁자 위에서 홀로 춤을 추다 춤사위가 점차 격렬해지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춤을 추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볼레로]는 라벨의 음악적 매력이 응축된 걸작입니다. 지적이면서도 야성적인, 현대적이면서도 원시적인 느낌이 넘실거리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곡입니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사실 치밀한 계산 아래 완성된 구조입니다. 똑같은 리듬의 두 멜로디가 다양한 악기로 계속 반복되는데 듣다 보면 지겨워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악기의 음색이 더해지며 점점 고조되며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동일한 속도의 보통 빠르기로 지속적인 선율을 이어가면서 작은북을 통해 끊임없는 타악감을 전달하는데 중독성이 강합니다. '딴, 따따따, 딴, 딴' 하는 리듬이 플루트의 독주를 시작으로 단조로운 반복이 진행되지만 점점 새로운 악기가 추가되면서 모든 악기가 장대하게 연주하는데, 커지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팽창이 묘한 긴장감을 만들면서 대미를 장식합니다.
하지만 연주자에게 이곡은 매우 힘든 곡이라고 합니다. 곡이 끝날 때까지 스네에(작은 북) 연주자는 한 번도 쉬지않고 같은 리듬을 반복해야 하는데 20번 쯤 치고나면 헷갈리기 시작해서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고 합니다.
라벨은 곡의 템포도 꼼꼼하게 지시해 놓았는데, 이탈리아어로 'Tempo di Bolero, moderato assai(볼레로의 템포로, 매우 보통 빠르기로)'입니다. 추가로 메트로놈 기호로 1분에 4분음표를 66개 연주하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이 곡을 연주하는데 17분 정도 소요되지만 연주자들은 이보다 빠르게 연주하는 편입니다.
라벨의 음악의 특징은 기존 작품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는 것이었습니다. 라벨의 이러한 편곡 활동은 자신의 경제사정을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지만, 예술성을 표출하기 위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라벨은 [볼레로]의 오리지널 관현악곡을 네 손 피아노를 위한 [볼레로, 1929]와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볼레로, 1930]로 바꾸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곡만 편곡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자곡가들의 음악도 편곡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의 무소륵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 1874]을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라벨의 편곡이 완성도가 높아서 오늘날 무소륵스키의 피아노 버전보다 라벨의 관현악 버전이 더 자주 연주될 정도라고 합니다. 라벨은 멜로디를 만드는 능력도 탁월했지만, 편곡 능력은 천재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애국심에 불타올라 조종사를 지원했으나 트럭 운전사로 참전했습니다. 전쟁 중에 병으로 쓰러져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전쟁 후 미국으로 피아노 연주 투어를 다니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 후유증으로 갈수록 병세가 심해져 기억상실증으로 뇌수술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5년 동안 거의 말도 못 하고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고통받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라벨은 평생 독신이었는데 동성애자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소 그는 "나는 음악과 결혼했어."라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고, "예술가는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정상적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이자 망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후손이 없었던 라벨의 모든 저작권은 그의 형제에게 돌아갔습니다. 2001년까지 발생한 저작권료만 6,300만 달러인데, 한화로 약 750억 원이 넘는 거액입니다. 2015년이 되어서야 모든 저작권 모두가 말소되었다고 하네요.
감상하기!
[볼레로]의 선율은 굉장히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지만, 그 속에서 악기가 하나씩 추가되고 합쳐지면서 음악의 색깔이 계속 바뀌게 됩니다. 그것을 감상의 포인트로 삼아 어떤 악기가 추가되었을 때 가장 좋은지를 살펴보기면 좋습니다.
멕시코의 여성 지휘자 알론드라 데 라 파라(Alondra de la Parra)가 지휘하고 WDR Sinfonieorchester(서부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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