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변화로 인하여 유럽 미술 시장은 위기를 맞이하였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회화 열풍이 일어 새로운 활로를 마련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는 미술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당시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림을 통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수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장식하는 회화와 조각, 스테인글라스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는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교회는 미술가들을 후원했고 미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대표적 큰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와 더불어 예술가를 후원한 왕실 역시 왕의 권위와 위엄을 자랑하고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정치 선전 도구로써 예술을 활용해 궁전을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유럽 미술계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개신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위해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하기 위해 교회당을 장식했던 회화와 조각 등을 파괴했습니다. 개신교의 미술 파괴 움직임은 스위스, 독일, 프링스, 영국에서 시작해 동유럽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가운데 교회에서 요청하는 주문이 줄어들어 소위 밥줄이 끊기게 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종교개혁자들이 미술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미술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회화와 조각이 오히려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는 데 도움 되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교회미술을 철저히 배격하고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루터는 관대한 편이었지만 칼뱅은 부정적인 편이었습니다.
이렇게 미술계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네덜란드에서 회화 열풍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100년 동안 네덜란드에서만 무려 600만 점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회화가 그려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은 '정물화', '풍경화'와 같은 새로운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렘브란트 반 레인 등의 걸출한 화가를 배출했습니다.
네덜란드 미술계는 어떻게 종교개혁 이후 위축된 미술계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을까요? 첫째, 교회와 왕실 등 후원자의 주문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네덜란드 미술계는 교역으로 부를 쌓은 상인들이 그림을 구매하도록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둘째, 그림 소재가 성경이나 신화 이야기에서 일반인들의 모습, 물건, 풍경 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초상화가 많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화가들이 성화, 신화화, 초상화를 그렸던 반면, 17세기 네덜란드에 등장한 부유한 상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를 원해 초상화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을 장식할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를 원했습니다. 그림을 판매하는 방식도 전에는 주로 교회와 귀족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미리 그려놓은 것을 판매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 미술의 분위기는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 Jan Vermee, 1632~1675)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우는데 눈썹과 속눈썹이 생략되어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연상케 합니다. 실제로 [모나리자]와 같은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베르메르의 작품 가운데 이례적으로 사람의 얼굴만을 클로즈업 했습니다. 검은 배경으로 앳된 얼굴의 소녀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매혹적인 눈빛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소녀의 신분이나 상황을 짐작할만한 소품이 하나도 없으며 그저 짙은 어둠 속에서 소녀의 얼굴만이 빛나고 있습니다. 소녀가 두르고 있는 터번은 렘브란트의 그림 속 모델에서도 자주 보이는 동양적인 도구로 인물에게 신비로움을 더해줍니다. 화폭을 점령한 빛은 이국적인 파란색 터번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데, 소녀는 마치 작별 인사를 하는 듯 알 수 없는 애수에 젖어 있습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란 제목에서 암시하듯 눈길을 끄는 것은 소녀의 왼쪽 귀에 매달린 커다란 진주 귀걸이입니다. 놀라운 것은 단 2번의 붓 터치로 귀고리를 묘사했다고 합니다. 허름한 복장의 소녀가 값비싼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했습니다. 이 소녀의 정체는 누구일까요? 소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소녀의 표정 또한 미스테리합니다.
이로 인해 그림의 의미에 대한 많은 추측과 해석이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 1962년 생)의 소설 [진주 귀걸이 소녀](1999년)입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화가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라고 주장하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설정이 소설과 그림을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이 소설을 바탕으로 동일한 이름의 영화가 2003년에 만들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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