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곰브리치(E. H. Gombrich)의 서양미술사에 보면 언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미술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도 미술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풀기 위한 시도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미술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이야기할 때 고대 로마의 저술가 플리니우스의 기록이 자주 인용된다고 합니다. 옛날 그리스 코린토스에 살았던 젊은 여성에게는 애인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먼 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다. 슬픔에 빠진 여성은 애인과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애인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갑자기 여성에게 멋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벽에 비친 그림자를 따라서 선을 그어 남자의 얼굴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은 애인을 등잔불이 밝게 비추는 벽 쪽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등잔불로 인해 생긴 그림자를 따라 남자의 윤곽을 정확하게 그려나갔습니다. 먼 길을 떠나는 애인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한 한 여인의 사랑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미술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기록은 오랫동안 예술계 안팎의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 담은 그림이 바로 18세기 영국 화가 조셉 라이트(Joseph Wright of Derby, 1734–1797)가 그린 [코린토스의 처녀](The Corinthian Maid)라는 그림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의 동굴 그림이 발견되면서 미술의 기원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요즘 출판된 미술사 책들은 구석기시대의 동굴 그림을 미술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본격적인 동굴 그림으로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스페인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의 그림입니다. 1879년에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마르셀리노 테 사우투올라(Marcelino de Sautuola)가 동굴 내부를 살피러 들어갔을 때, 함께 들어간 그의 어린 딸 마리아(Maria)가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그림이 발견되었지만 학자들은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미개한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런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다른 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그림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알타미라 동굴 그림은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40년 프랑스의 남부 라스코(Grotte de Lascaux) 동굴에서는 들소와 말, 사슴 등의 동물이 그려진 약 900개의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알타미라 동굴, 라스코 동굴, 1994년에 발견된 남부 프랑스의 쇼베 동굴(Chauvet Cave)에 그려진 그림의 중요한 특징은, 대부분 동물이라는 것과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 같기도 하고, 차라리 반인반수라고 해야 할 법한 형상이 가끔 등장하는데 어떤 존재일까요? 선사시대 사람들로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사람 같은 존재는 샤먼(shaman, 초자연적인 존재와 사람들을 중개하는 역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왜 동물을 그렸고 사람은 그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사냥이 잘 되기를 원하는 그림일까요? 아니면 원시신앙 때문에 그림이 시작된 것일까요? 미술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언제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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