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V와 RCA 로고 속 강아지 '니퍼'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His Master's Voice'의 유래부터 LP 수집가들을 위한 HMV 라벨의 비밀과 가치 판단법까지 모두 알려드립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혹은 오래된 LP 레코드판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이 이미지가 낯설지 않을 겁니다. 축음기(Gramophone) 나팔관에 귀를 바짝 대고 무언가를 경청하는 강아지. 이 강아지는 음악 산업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강아지의 이름이 '니퍼(Nipper)'라는 사실, 그리고 그 모습 뒤에 가슴 뭉클한 사연과 LP 수집가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비밀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저도 익숙한 것이었으나 그 사연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어요.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강아지, '니퍼'와 그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주인을 그리워한 강아지, '니퍼' 이야기
모든 것은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인 강아지 '니퍼'(Nipper, 1884–1895)는 원래 마크 바로(Mark Barraud)라는 사람의 반려견이었습니다. 니퍼는 원래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강아지였는데, 이름처럼 주인의 발목을 잘 물던 버릇 때문에 ‘Nipper’(깨무는 녀석)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크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생이자 화가였던 프랜시스 바로(Francis Barraud)가 니퍼를 맡아 기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프랜시스는 창고에서 형이 생전에 녹음해 둔 목소리가 담긴 축음기를 발견하고 재생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죽은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니퍼가, 마치 주인이 살아 돌아온 듯 나팔관 앞으로 다가가 귀를 쫑긋 세우고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애틋하고 인상적인 장면에 영감을 받은 프랜시스는 그림을 그렸고, 여기에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주인을 향한 강아지의 순수한 그리움이 담긴 이 작품이 바로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프랜시스가 처음 그렸던 그림 속 축음기는 검은색 나팔관을 가진 구형 '실린더 축음기'였으나, 그래머폰 컴퍼니가 자사의 최신 디스크 모델로 보이도록 밝은 금색 나팔관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2. 그림 한 장, 세계적인 브랜드의 상징이 되다
프랜시스는 처음에는 이 그림을 여러 회사에 팔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1899년 영국의 '그래머폰 컴퍼니(The Gramophone Company)'가 그림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저작권을 사들입니다. 그들은 그림 속 축음기를 자사의 최신 모델로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고, 마침내 1909년부터 자사에서 발매하는 모든 레코드의 라벨에 이 그림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주인의 목소리' 로고는 곧 최고 음질과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니퍼' 로고가 찍힌 음반을 믿고 구매했습니다. 이 로고는 훗날 HMV(His Master's Voice)와 미국 RCA Victor 등 세계적인 음반사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며, 음악 산업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3. LP 수집가들의 보물지도: HMV 라벨의 비밀
'니퍼' 로고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넘어, 클래식 LP 수집가들에게는 매우 실질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바로 음반의 제작 시기, 희소성, 음질, 그리고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HMV 라벨은 시대에 따라 미묘하게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이 차이가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수십, 수백만 원의 가격 차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스테레오(ASD) 시리즈의 라벨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1세대: '화이트-골드' 라벨 (White-Gold Label) 흰색 바탕에 금색 테두리가 둘러진 초판(First Pressing) 라벨입니다. 음질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아 수집가들 사이에서 최고가에 거래되는 '꿈의 라벨'입니다.
- 2세대: '세미-서클' 라벨 (Semi-Circle Label) 붉은색 바탕에 반원 모양의 니퍼 로고가 들어간 라벨입니다. 이 역시 높은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 3세대 이후: '포스트 스탬프' 라벨 (Postage Stamp Label) 우표처럼 사각 프레임 안에 컬러 니퍼 로고가 들어간 형태로, 이후 흑백 로고로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라벨의 디자인만으로도 음반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니퍼가 축음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녹음된 음성에서도 주인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낀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살아생전의 목소리가 축음기에 기록되고, 사랑하는 이가 그 소리를 다시 듣는 순간, 비록 이별했더라도 음악은 그 사람을 다시 불러오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영원히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던 목소리가, 기술의 힘으로 추억을 지켜주는 감동을 전해줍니다.
오늘날에도 HMV 음반점의 간판이나 고전 음반 표지에서 니퍼를 만날 수 있는데, 이 작은 강아지가 음악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의 집에도 오래된 HMV 음반이 있다면, 라벨 속 '니퍼'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니퍼'는 실제로 존재했던 강아지인가요?
네, 니퍼(Nipper, 1884–1895)는 실제 영국에서 살았던 강아지로, 죽은 주인의 목소리를 축음기에서 듣는 모습이 그림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Q. HMV와 RCA Victor 로고는 같은 것인가요?
두 로고 모두 'His Master's Voice' 그림을 바탕으로 했지만, 영국에서는 HMV, 미국에서는 RCA Victor 브랜드로 사용되었습니다.
Q. HMV 라벨 중 어떤 것이 가장 가치가 높나요?
일반적으로 초판 '화이트-골드' 라벨이 최고가로 거래되며, 수집가들이 가장 선호합니다.
Q. HMV 로고는 지금도 사용되나요?
네. 오늘날에도 HMV 음반점 간판과 일부 클래식 음반에서 니퍼 로고를 여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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