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심리학자 존 슬로보다(John A. Sloboda)의 연구로 밝힌 음악 감동의 법칙. 아포지아투라, 반복진행, 예기치 못한 화성 전환 등 세 가지 음악적 장치가 클래식에서 전율·눈물·감동을 어떻게 만드는지 심리학적으로 설명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울컥했던 기억 있으신가요? 어떤 곡에서는 전율이 돋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감정은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존 앤서니 슬로보다(John Anthony Sloboda, b. 1950) 박사는 이 ‘클래식 감동’의 정체를 음악 감정 심리학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는 83명의 피험자에게 다양한 클래식 곡을 들려주고, 청취 도중 눈물이 나거나, 소름이 돋거나, 심장이 빨라지는 등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는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하나의 공통된 법칙이 도출되었습니다.
"감동은 예기치 못한 음악적 표현에서 시작된다."
즉, 음악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때 청취자는 긴장과 놀람을 느끼고, 이후 다시 익숙한 흐름으로 돌아올 때 강
한 해소감과 만족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긴장과 해소의 주기가 반복될수록 감정 반응은 더욱 깊어집니다.

연구 이후의 평가와 현재의 위상
슬로보다의 연구는 2001년, 패트릭 유슬린(Patrik N. Juslin)과 함께 편집한 옥스퍼드대학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의 학술서 『Music and Emotion: Theory and Research』에 수록되면서 음악심리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제시한 ‘예기치 못한 음악적 전개 → 긴장 → 해소 → 강한 감정’ 구조는 이후 다양한 실험과 뇌과학 연구에서 부분적으로 뒷받침되었고, 오늘날에도 음악 감정 심리학의 핵심 틀 중 하나로 인용됩니다. 물론 초기 연구는 서양 클래식 음악과 제한된 표본(83명)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후 유슬린 등이 이를 확장하여 BRECVEMA 모델(음악 감정 유발의 8가지 메커니즘)에 통합했고, 더 다양한 장르와 문화권에도 적용 가능한 이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 연구를 독립적인 ‘절대 법칙’이라기보다, 감정 반응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감정을 움직이는 세 가지 음악적 장치
1. 아포지아투라 (Appoggiatura)
‘아포지아투라’는 주요 음이 나오기 직전, 아주 잠깐 동안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장식음을 끼워 넣는 기법입니다. 살짝 엇나가는 듯한 음이 순간적인 긴장을 만들고,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안정감과 쾌감을 극대화합니다. 이 미묘한 ‘살짝 어긋남’이 청취자의 감정을 크게 흔듭니다.
- 사례 1: 알비노니 – 아다지오 G단조
오르간 화음 위로 애절한 바이올린 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 0:55부터 감상 (카라얀 & 베를린 필)
- 사례 2: 바흐 – 마태 수난곡
합창 가사 중 schuldig(죄)라는 단어에 아포지아투라가 사용되어 비장미를 극대화합니다.
⏱ 7:19부터 감상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
- 사례 3: 멘델스존 –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관현악 도입 후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첫 멜로디에서, 부드럽고 애틋한 선율이 시작부터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전체 감상 (안네 소피 무터, 베를린 필)
2. 반복진행 (Sequence)
‘반복진행’은 같은 멜로디나 화음을 계단을 오르내리듯 다른 음역에서 반복하는 기법입니다. 청취자는 패턴을 인지하고 다음을 예측하지만, 음의 높이가 달라지며 반복될 때 감정이 점점 쌓이고 고조되는 효과가 납니다.
- 사례 1: 브람스 –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주제가 끝난 뒤, 피아노가 명상적인 멜로디로 응답하는 부분입니다. 깊은 위로와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 전체 감상 (크리스티안 짐머만, 베를린 필)
- 사례 2: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
오케스트라의 강한 질문(G단조)에 피아노가 예상과 달리 부드러운 E♭장조 화음으로 응답하며,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2:10부터 감상 (짐머만·번스타인)
3. 예기치 못한 화성 전환
익숙한 화성 진행 속에 갑작스럽게 낯선 화성이 등장하면 청취자는 충격과 긴장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시 조화로운 진행으로 돌아올 때, 그 긴장 해소가 카타르시스로 이어집니다.
- 사례 1: 말러 – 교향곡 3번 (1악장)
74마디 부근, 격정적인 흐름 속에 예상치 못한 화성 변화가 등장합니다.
🎥 전체 감상 (오슬로 필하모닉)
- 사례 2: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4번 (1악장)
105마디 부근, 극적인 화성 전환으로 긴장이 고조됩니다.
🎥 전체 감상 (짐머만 등)
존 슬로보다 연구의 핵심
"음악이 가장 감동을 주는 순간은 예상과 다른 길로 이탈했다가, 다시 익숙한 길로 돌아올 때 강렬하게 일어난다!"
이제 여러분이 사랑하는 ‘인생 곡’을 다시 들어보세요. 혹시 그 전율의 순간에 아포지아투라, 반복진행, 예기치 못한 화성 전환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클래식 감동의 메커니즘을 알게 되면, 음악은 훨씬 더 깊고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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