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음악이 싫은 게 아니라 바그너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던 바그너의 음악을 포스팅합니다.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가창 중심의 오페라에서 벗어난 음악극(music drama, 문학, 음악, 미술, 무용, 극 등의 모든 요소를 집대성한 종합 예술 작품을) 창시하였는데, 그 대표작이 <니벨룽겐의 반지>입니다. 이 작품은 버그너의 최대 걸작이자 음악적 이상을 실현한 필생의 역작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긴 클래식 음악입니다. 또한 공연하는데 4일 동안 전체 공연시간이 15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입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CD 15장을 들어야 할 정도로 길기 때문에 전곡 감상이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총 4부작으로 제1부(전야제)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제2부(제1일) 발퀴레(Die Walküre), 제3부(제2일) 지크프리트(Siegfried), 제4부(제3일)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은 독립적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사랑, 배신과 복수 등 인간 삶에서 펼쳐지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요.
바그너는 왜 이렇게 긴 음악을 만들었던 것일까요? 원래 초대작품을 구상한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1850년 마지막 부분인 ‘신들의 황혼’을 먼저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1851년 ‘지크프리트’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다 주인공 부모에 대해서도 덧붙여야겠다고 생각해 1852년 ‘발퀴레’를 작곡하게 되었고, 모든 이야기의 발단인 ‘라인의 황금’을 1871년에 완성했습니다. 최종 완성하기 전에는 바그너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를 작곡했습니다.
대본도 바그너가 직접 썼는데, 바그너는 북유럽 신화와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등을 참고하여 등장인물이나 줄거리에 변형하고 창작하여 <니벨룽겐의 반지>를 완성하였습니다.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시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이와 전혀 다른 이야기이며, 오히려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와 유사성이 더 있습니다.
< 니벨룽겐의 반지>의 특징은 대사로 표현하기 어려운 극 중의 분위기나 인물의 심리 묘사를 음악으로 표현하여 통상적인 오페라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높다는 것입니다. 음악적 표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큰 관현악을 사용했으며, 매우 낮의 매우 낮은 저음부터 아주 높은 고음까지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악기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100 개가 넘는 유도동기를 사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유도동기 (Leitmotiv)란 인물, 상황 등 반복되는 짧은 주제나 동기를 묘사할 때마다 공통으로 사용되는 주제선율을 의미합니다.
이뿐 아니라 공연의 웅장함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대장치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 니벨룽겐의 반지>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무대장치, 최고의 실력을 갖춘 가수들, 대편성의 교향악단, 특별한 연주자들이 필요하기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바그너가 26년 동안 <니벨룽겐의 반지>를 쓰는 동안 바이에른 왕국(현 독일 바이에른주)의 국왕 루트비히 2세가 많은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바그너의 음악에 매료된 젊은 국왕은 사치로 빚더미에 앉은 바그너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이 완성되자 국왕은 이 작품을 상연하기 위해 뮌헨 근교에 위치한 바이로이트에 극장까지 지어주었는데, 1876년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초연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름이면 이 극장에서 오직 바그너의 오페라만을 상연하는 바이로이트 음악제가 열리는데, 전 세계에서 바그너 팬들이 모여드는 음악제로도 유명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그너가 국왕이 지원하는 돈을 물 쓰듯이 썼던 까닭에 바이에른 왕국의 재정은 점점 궁핍해졌습니다. 그러다 궁정 쿠데타가 일어나 국왕은 유폐되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집안의 유산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니벨룽겐의 반지> 주요 인물들입니다.
Brünnhilde, a Valkyrie (soprano)
Sieglinde, Wotan’s human daughter (soprano)
Freia, goddess of youth (soprano)
Gutrune of the Gibichungs (soprano)
Fricka, Wotan’s wife (mezzo-soprano)
Waltraute, a Valkyrie (mezzo-soprano)
Erda, goddess of the earth (contralto, 여성의 가장 낮은 음역)
Siegmund, Wotan’s human son (tenor)
Froh, god of the sun (tenor)
Loge, god of fire (tenor)
Mime, a Nibelung (tenor)
Wotan, king of the gods (bass-baritone)
Alberich, a Nibelung (bass-baritone)
Donner, god of thunder (bass-baritone)
Hunding, Sieglinde’s husband (bass)
Gunther of the Gibichungs (bass)
Hagen, son of Alberich and half brother to the Gibichungs (bass)
Fafner, a giant (bass)
Fasolt, a giant (bass)
3 Rhinemaidens, 3 Norns (the Fates), 7 more Valkyries, and the Forest Bird.
다음은 <니벨룽겐의 반지>의 줄거리입니다.
제1부 <라인의 황금>은 1막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쟁이 부족 니벨룽겐 가운데 욕심 많은 알베리히는 라인강의 황금을 지키는 3명의 처녀들(보글린데, 벨군데, 플로스힐데)로부터 '황금으로 만든 반지를 소유하는 자는 온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알베리히는 처녀들에게서 황금을 빼앗아 달아난다. 하지만 알베리히는 신들(보탄, 프리카, 로게, 도너, 프로)의 왕 보탄에게 황금을 빼앗기고 만다. 보탄 역시 땅 위의 거인 형제인 파졸트와 파프너에게 빼앗기고 만다. 거인 형제들은 서로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고, 결국 파프너가 프졸트를 죽이게 된다.
제2부 <발퀴레>는 3막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탄은 반지를 빼앗아 간 파프너에게서 반지를 되찾아 올 인간을 창조하기로 마음먹는다. 보탄은 인간 여자의 몸을 통해 지그문트와 지클린데 쌍둥이 남매를 낳는다.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지클린데의 남편 훈딩으로부터 도망친다. 지그문트와 지클린데가 사랑을 하게 되어 아이를 낳게 되는데, 이 아이가 후에 지그프리트다. 남매끼리의 사랑을 용납할 수 없는 보탄은 자신의 딸 브륀힐데와 훈딩에게 지그문트를 죽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한 브륀힐데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지그문트를 돕는다. 자신의 명령을 긴 것에 분노한 보탄은 지그문트와 훈딩을 죽인다. 보탄은 자신의 명령을 어긴 브륀힐데에게 영원한 잠을 내리고 그녀의 주위에 꺼지지 않는 마법의 불을 두른다.
제3부 <지크프리트>는 3막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클린데는 지크프리트를 낳고 죽는다. 난쟁이 알베리히와 동생 미메는 지크프리트를 키우며 함께 산다. 지크프리트는 용으로 변신한 파프너를 죽이고 반지를 차지한다. 미메는 지크프리트를 속여 반지를 빼앗으려고 한다. 그의 계략을 알아차린 지크프리트는 어머니가 물려준 마법의 칼로 미메를 죽인다. 지크프리트는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보탄의 딸 브륀힐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깨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 지크프리트는 마법의 불을 뚫고 깊은 잠에 빠져든 브륀힐데를 발견한다.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에게 입을 맞추자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다. 지크프리트와 그녀는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제4부 <신들의 황혼>은 3막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크프리트는 브뤼힐데에게 정의 표시로 반지를 준다. 군터왕과 신하 하겐, 그리고 군터의 여동생 구트루네는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이들의 성을 방문한 지크프리트에게 독이 섞인 술을 마시게 해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한다. 약을 마신 지크프리트는 군터의 여동생과 결혼한다. 복수심에 가득 찬 브륀힐데는 하겐에게 지크프리트의 급소를 알려주어 지크프리트를 살해한다. 반지를 사이에 둔 다툼 끝에 하겐은 군터왕까지 죽여버린다. 마침내 모든 것이 하겐의 흉계였음을 알게 된 브륀힐데는 반지를 빼앗아 라인강에 던진다. 브륀힐데는 지크프리트를 화장한 불 속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한다. 불길이 타오르고 최고조에 달했을 때 라인 강이 넘친다. 그리고 라인 강의 처녀들이 나타난다. 이때 하겐이 미친 듯이 덤벼들어 반지를 차지하려고 강물로 뛰어들지만, 보글린데와 벨군데에게 물속으로 끌려간다. 플로스힐데가 반지를 쳐들어 보인 뒤에 강물은 다시 잠잠해진다. 그리고 뒤에 불길이 보인다. 발할 성이 불타오르고 그 속에서 신들과 영웅들은 종말을 맞는다. 그렇게 해서 신들의 거처인 발할 성은 무너지는 것으로 극은 종결된다.
너무 길죠? 그래서 지휘자 로린 마젤이 1987년 관현악 축약판을 발표했고, 네덜란드 작곡가 헨크 데 블리거가 1991년 관현악 편곡집을 내놓았으며, 독일의 작곡가 겸 첼리스트 프리드만 드레슬러가 2009년 관현악판을 편곡했습니다.
이 중에서 블리거(Henk de Vlieger, 1953년 생)가 바그너 악극의 전문 편곡가로 평판이 높습니다. <니벨룽겐의 반지>를 70분 정도 분량으로 압축했는데, 극의 전개 순서에 따라 단락 없이 매끄럽게 연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들의 발할라 입성; '발퀴레의 기행', 마법의 불; '지크프리트의 장송행진곡', '브륀힐데의 희생' 등 대표적인 명장면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습니다. 블리거의 홈페이지를 보니 그가 편곡한 곳으로 발매한 CD과 동영상도 있네요.
동영상을 링크합니다. 한 번 도전해 보실래요?
https://youtu.be/1PBhlPeTJ_g?si=2CJ_Se7J4ME2svZf
바그너의 생애와 음악에 대하여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ww.dasichae.kr/2023/06/Richard-Wagner.html
https://www.dasichae.kr/2023/07/Brahms-vs-Wagneri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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